인천 신포시장 안에는 오래된 중국 양화점이 있다. 양화(洋靴)는 예전에 서양식 가죽 신발을 부르던 말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으니까 이미 40년이 넘었는데, 좀 더 찾아보니 1940년대 초반에 가게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의흥덕 양화점의 대표 디자인은 납작한 중국식 구슬 신발이다. 구슬 장식은 한 땀 한 땀 여사장님이 만드시는데 아직 나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만들어 놓은 장식을 보면 정성과 실력이 대단하다. 장인이 만든 구슬 장식이 구두 앞코에 붙여지면 평범한 벨벳 구두가 반짝 빛난다. 장식 모양도, 색깔도 다양해서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어린 눈에도 예뻐 보였는지 시장구경을 하던 딸이 사달라고 졸라서 5살 생일에 분홍색으로 선물해 주었는데 잘 때도 안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엄마를 졸라 여기서 구두를 맞췄었는데 내가 오래 다녔던 신발가게에서 딸의 구두를 맞춰 신기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 자리를 계속 지킨 가게이다 보니 나처럼 딸을 데리고 오는 손님도 있고, 손녀를 데리고 오시는 할머님도 계시다. 그럴 때면 가게 안은 옛 추억들로 가득 찬다.
의흥덕 양화점의 시그니처. 중국식 구슬 신발
한 번은 아들과 함께 신발 구경을 하러 들렀는데 마침 주인아저씨가 구두를 만들고 계셨다. 낡은 재봉틀 돌아가는 게 어찌나 신기한지 아들이 그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내가 장난 삼아 사장님한테 기술 배워서 가게 좀 물려받으라고 했더니 요즘 말이라도 기술 배우라는 엄마가 없는데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이제는 정말로 가게를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고 사장님이 이 가게를 지키는 마지막 기술자라고 하셔서 놀랐다. 자녀분들 중에서도 대를 이을 사람이 없냐는 질문에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시장에 들를 때마다 가게가 잘 있는지 기웃거리게 된다.
발은 큰데, 볼은 또 안 넓어서 괜찮아요. 예쁜 발이라고 말해주시며 내 발 길이를 재주셨다.
얼마 전 가게에 들러 여름 신발을 맞췄다. 지난번에 들렀을 때는 겨울이었는데 해가 지나 여름이 되어도 안에서 일하시는 걸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가게로 들어갔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그럴 줄 알았는데 시장을 갈 때마다 심호흡을 한번 하게 된다. 혹여 문이 닫혀있는 날에는 가슴이 철렁하기도 한다.
이 예쁜 구두를 할머니가 될 때까지 계속 신을 수 있도록 손재주 좋은 구두 기술자가 마법처럼 나타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