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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Curly Choi Jul 05. 2023

[아이들과 유럽 자동차여행 40일] - 11화

여행 4일 차 (23.1.14) - 파리 퐁피두센터 & 별책부록

어제 추위에 떨며 바토무슈를 타는 바람에 나와 아이들 모두 컨디션이 별로다. 셋 다 감기 기운이 있어 머리도 살짝 아프고 목도 따갑다. 오늘은 이번 여행 4일 차로 토요일이다. 그리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파리를 떠나 우리의 두 번째 여행지인 스트라스부르로 간다. 


오늘은 도착 첫날 만났던 초등학교 친구 내외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사실 미리 약속한 것이 아니라면 오늘은 집에서 쉬고 싶었다. 도착한 날부터 3일 동안, 여행 시작의 기쁨에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 되어 살짝 흥분 상태에서 강행군을 했던 것 같다. 특히 어제 늦은 밤까지 매서운 강바람을 맞으며 파리 야경을 구경하느라 늦게까지 돌아다닌 탓에 아이들이 다소 지친 것 같다. 그냥 오늘 하루 숙소에서 푹 쉬면 좋겠는데, 친구 내외와 미리 잡아둔 약속이라 지금 와서 취소하기가 미안했다. 곤히 자는 아이들을 깨워 감기약을 먹이고 좀 더 재운다. 약속 시간이 오후 1시니까 집에서 12시 전에 여유 있게 나가면 될 것 같다. 사실 오늘 오전에는 퐁피두센터를 구경하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지만, 지금 아이들의 상태로는 아무래도 무리다. 오늘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구경하고 싶은 곳이 많지만, 우리 여행은 일주일 짜리 단기 여행이 아닌 40일을 다녀야 하는 긴긴 여행이다. 여행 초반에 무리해서 탈이라도 나면 이후의 여행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11시가 훨씬 지나 집을 나선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상태가 아니라서 우버를 부르기로 한다. 이번 여행의 첫 우버다. 우리는 차로 여행을 다닐 계획이라 우버를 탈 일이 있겠나 했지만, 오늘은 예외다. 파리 시내에서의 운전은 파리 들어오고 나갈 때 외에는 하지 않기로 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15분 정도를 걸어야 하는데 무거운 다리를 끌고 가기가 오늘은 좀 어려워서 우버를 이용한다.

우버를 타고 이동하는 중. 보슬비가 내리는 파리.

파리의 날씨는 해괴망측하다고 한다. 맑다가 비가 오거나 춥다가 덥거나. 더운 날 그냥 나갔다가 추워서 고생한 후로 더운 날도 긴팔패딩을 갖고 나간다는 한 파리시민의 이야기도 들었다. 오늘도 보슬비가 내리는 날씨다. 이러다 맑게 갤지 아님 더 큰 비로 이어질지는 모르는 상황. 물론 가방에 우산과 비옷도 함께 챙겨 넣었다. 


우버를 타고 퐁피두센터까지 간다. 토요일 12시경인데, 아직은 한산하다. 퐁피두 센터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싶으나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1시라서 미술관 구경은 어려울 것 같다. 첫날 루브르 박물관 입장하면서 구매했던 파리 시내 미술관 프리패스 2일권의 마감 시간은 오후 1시까지다. - 어제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도 미술관 패스 2일권으로 이용했었다 - 친구와 점심을 먹고 오면 다시 표를 사야 하는 상황이 된다. 잠시 고민하다가 프리패스를 그냥 날리긴 아까우니 미술관 구경은 못해도 퐁피두센터 전망대까지는 올라가 보기로 한다. 

퐁피두센터 전망대 올라가는 길

날씨가 흐려 파리 시내가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저 멀리 몽마르트 언덕도 보이고 어제 가까이서 봤던 에펠탑, 몽파르나스 등등 큰 산이 없는 파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퐁피두센터에 있는 현대미술관 입구가 눈앞에 있고 티켓이 있는데도 시간이 없어 들어가 보질 못하니 많이 아쉽다. 그래도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욕심을 낼 때와 욕심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귀찮음이 나를 지배하려 할 때는 욕심을 부려서 도전을 하는 것이 맞고, 시간적으로나 건강상의 이유로 무리를 하지 말아야 할 때는 욕심을 버려야 할 때이다. 파리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기에 다음에 오면 되지..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욕심과 함께 마음의 부담도 덜고 전망대 구경 후 약속 장소로 향했다. 

퐁피두센터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리


친구 내외와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은 퐁피두센터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여기 와서 3일째,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있다. 가까운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가는 것이 더 번거롭고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손해다. 친구가 예약한 식당은 프랑스 레스토랑이었다. 친구가 아이들을 위해 한식당을 알아볼까 물어봤었는데, 내가 프랑스 현지식을 먹자고 제안했다. 아직 한식당이 절실할 만큼 여행을 오래 다니지도 않았고, 아무래도 현지인 동행자가 있을 때 현지식을 먹는 것이 음식에 대한 설명도 들으며 현지 식당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식당을 가면, 파리에서 내가 한식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될 텐데 그것은 좀 어색할 듯했다. 한식에 대한 설명은 아무래도 다음에 친구 내외가 한국에 여행 왔을 때 하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다.  


우리가 먼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 내외가 도착했다. 친구의 남편 파트릭은 프랑스인인데, 현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만났는데 인상이 푸근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갖고 있는, 정이 가는 사람이었다. 초딩 입맛에 유난히 입이 짧은 우리 아이들이 걱정이 되었지만 파트릭에게 현지식으로 인기 있는 메뉴 선택을 부탁했다. 소 뽈따구살 스테이크, 치킨, 하몽 그리고 생선살 튀김 등을 주문했고 와인을 함께 곁들였다. 아이들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처음엔 다소 경계를 했으나, 이내 조금씩 맛을 보고는 생각보다(?) 많이 맛있게 먹었다. 아마 아이들도 이런 자리에서 음식 투정을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던 듯하다.


처음 만나는 친구의 남편과 어렵사리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도 정신이 없었는지, 음식 사진이며, 친구 내외와 기념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그쪽 사람들 문화를 잘 모르다 보니, 불쑥 사진 촬영을 요구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인스타용으로 음식 사진 찍는 것도 어떻게 보일까 몰라 주저했던 것 같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굳이 그렇게 조심스러워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주도에서 공수해 간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는 친구 남편 파트릭 (당사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

친구 내외가 오후에 노르망디에 있는 별장에 일이 있어 간다고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너무 고맙고 감사한 제안이었지만, 왕복 4시간 이상 걸리는 곳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엔 지금 나와 아이들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파리에 오면 그때 같이 가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대신 그냥 헤어지긴 아쉬우니 가까운 곳에 아이스크림 맛집에 디저트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찾아갔다. 

보슬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는데, 거리에 현지인들 중 우산을 쓴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친구와 같이 우산을 쓰고 걷고 나는 파트릭과 함께 비를 맞으며 걷는다. 걸으면서 파리의 역사와 내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마치 1인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것 같아서 즐겁다. 걷다 보니 파리에 진짜 파리바케트가 있다. 우리나라 프랜차이즈가 파리의 이름을 달고 역으로 파리에 진출하다니. 신기하고 재밌다. 

진짜 파리에 있는 파리바게트

디저트까지 다 먹고 친구 내외와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졌다. 가까운 시일에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했고, 그때 제주도에 꼭 와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시간이 어느덧 4시에 가까워졌다. 원래 우리 계획은 오후에 상제리제 거리를 걷고 개선문을 구경하고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신이 피로하여 샹젤리제 까지 가기는 무리고 가까운 퐁피두센터를 다시 가서 가볍게 구경을 하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퐁피두센터에 도착했더니 오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미술관 들어가는 줄이 길다. 미술관 입장을 위한 줄, 도서관에 공부하러 들어가는 학생들의 줄 등등이 엉키고 엇갈려 퐁피두 센터 광장에 사람이 가득하다. 입장을 관리하는 미술관 직원이 광장 한가운데로 나와서 '미술관 입장까지는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한다..'라고 큰소리로 외친다. 아이들과 잠깐 상의를 한 후 역시 이번에는 현대미술관 구경이 어렵겠다, 다음에 꼭 다시 오자고 다짐하며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 다음 편에 계속...



# 별책부록 - 프랑스의 우유에 대해서


우리 아이들이 우유를 좋아해서 프랑스 마트에 우유를 사러 갔었다. 우리나라 마트에 가면 일반우유, 저지방, 생크림 등만 구분하면 되는데, 프랑스 마트에 갔더니 이런저런 우유 종류가 많다. 흠... 잠깐 고민하다가 'Lait Fermente'를 집어 들고 왔다.  

집에 도착해서 우유 좋아하는 워니가 사 온 우유를 마시더니 "아빠! 이거 우유 아니고 요거트야!" 한다. 나도 마셔봤는데, 플레인 요거트 같기도 하고 살짝 상한 우유 같기도 한 맛. 거의 먹지 못하고 다 버렸다. 


다음 날 다시 마트를 가서 우유를 사는데, 워니가 확실하다며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온 우유는 'Lait entier'. 나중에 알았지만 다른 말로 '지방 가득한 우유'다. 

집에 와서 우유를 먹어본 워니가 "아빠, 이건 우유는 맞는데, 맛이 완전 없어.." 또 실패라니. 워니는 자기가 확신하다며 강하게 우겨 사 온 우유다 보니 책임을 다하려는 듯 그 한 병을 혼자 다 마셨다. 그 지방은 다 워니 뱃살로.


두 번째 실패를 한 후에 그제야 프랑스 우유 종류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을 해본다. 그랬더니 우리나라 우유와 가장 비슷한 맛을 내는 우유는 'Lait demi ecreme'라고 한다. 즉 절반 탈지유. 지방을 반만 덜어낸 것. 역시 사람은 배워야 몸이 고생을 안 한다. 참고로 저지방 탈지유는 'Lait ecreme'. 먹어보면, 니맛도 내맛도 안 난다 함.


참고하시고 프랑스에서 우유 구매 시 우리와 같은 불상사는 겪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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