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여성 사이, <리턴 투 서울> <일요일의 병> <디 아워스>
세 편의 영화를 통해서 만나는 세 명의 엄마
엄마와 여성 사이, <리턴 투 서울> <일요일의 병> <디 아워스>
감독: 데이비 추
주연: 박지민
수상:
48회 LA 비평가 협회상(신인상)
15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감독상, APSA 베스트 뉴 퍼포머)
23회 도쿄필름엑스(심사위원특별상) 등
아기 때 프랑스로 입양됐다가, 25세 성인이 되어 어쩌다 한국을 찾은 프레디. 외모는 동양인이지만 정체성은 유럽인,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질문하면서, 혼란과 방황은 당연히 찾아온다. 영화는 한국을 찾은 후 몇 년에 걸친 프레디의 성장, 그리고 '자신을 버린' 부모와의 천천히 가는 '회복' 등을 보여준다.
재혼한 아버지는 프레디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어쩌지 못 해 괴로워하고, 온 가족은 그녀를 따뜻하게 맞이하지만, 프레디에게는 이 모든 게 그저 어색하고 불편하다. 아버지의 사랑은 간섭이고, 가족의 친절은 답답하다. 너무나도 다른 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오래전 유럽 대사관에서 일했을 때 한국계 입양인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도 그랬다. 또 비자 업무를 담당하던 나는 유럽으로 가는 입양아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도 또한 놀랐다.
지금은 은퇴하신 당시 대사님에게 <리턴 투 서울> 영화를 소개했다. 유럽에 입양됐다가 성인이 된 후 한국에 돌아온 그들과 많이 교류한 분이라서, 느낌이 특별할 것 같았다. '(내가 한국에서 일하던 시절) 입양아들이 한국을 찾은 후, '(나를 위해서 나를 버렸다(입양)'는 친부모의 얘기를 믿지 못하겠다'라고 했을 때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는 답장이 왔다.
영화 속 프레디의 아버지도 ‘너를 위한’ 결정이었다는, 진부한 변명을 한다.
그나마 딸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엄마는 딸과의 만남을 거부하다가 거의 영화 끝에 나타난다. 소리 없는 울림이었다. 아픔이고 기쁨이며, 가시 같은 현실과의 포옹이었다. 프레디 역을 맡은 박지민 배우는, 이게 첫 작품이란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정 몰입한 연기를 멋지게 보여줬고, 영상미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프레디 엄마의 대답은, 블러 처리된 화면과, 이메일 주소를 쓴 메모 한 장으로 처리된다. 그리고 한없이 작아진 ‘한 여성’이 보였다.
두 번째 영화는
감독: 라몬 살라사르
출연: 바르바라 레니, 수시 산체스 외
스페인 33회 고야상 여우주연상
8살 때, 엄마에게 버림받은 딸 키아라. 35년 만에 생모를 찾아간다. 스페인 상류사회에서 화려한 삶을 누리던, 그녀의 엄마 애나벨에겐 충격이다. 남편에게도 숨겼던 자신의 과거가 드러날 판이라 전전긍긍할 뿐이다. 그러나 남편은 이 딸의 존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고, 첫 반응은 간단하다. '돈을 원하나?' 그러나 키아라가 원하는 건 의외로 열흘간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것뿐이었고, 다른 조건 없이 속사포처럼 계약서에 서명까지 한다.
영화는 정말 건조하고 느린 템포로 전개된다. 미장센(mise-en-scéne)의 활용을 극대화한 아트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어두운 바위 동굴(The Rock)은 참으로 묵직하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자식을 떠난 스토리라는 맥락에서, 오래전에 작업했던 영화가 생각났다.
로라(줄리안 무어 분)는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야 했던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먼 훗날 이렇게 회고한다.
It would...be wonderful to say you regretted it.
It would be easy.
But what does it mean ?
What does it mean to regret...
when you have no choice ?
It's what you can bear.
There it is.
No one's going to forgive me.
It was death.
I chose life.
내 선택을 후회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좀 편할 수 있겠지만
부질없는 짓이죠
그건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무게를 지고 가야 해요
죽음 같은 현실보다 삶을 택한 거뿐이지만
누구도 용서하지 못할 짓이 됐으니까요
세 편의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엄마와 여성, 한 사람이 지고 가는 두 개의 정체성'이다. 어떤 여성에게도 '엄마'가 자신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임을 포기'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버려진 아이는 풀지 못 할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각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해서 서로 다른 해답을 찾아간다. 프레디는 삶의 지평을 넓혀가면서 살아가게 됐고, 이젠 미움 없이 엄마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다.
삶을 마감하는 순간, 키아라는 '다 이해한다' (Mamá...Que lo entiendo. Todo. : I understand. Everything.)고, 엄마에게 속삭인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엄마와의 애증의 감정을 풀어간다.
로라의 아들 리차드는 평생 그 해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풀지 못 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로라는 자기가 버린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오래 전의 선택을 후회할 수 없는 자신'의 숙명을 인정한다.
영화는 개연성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혼합될 때, 공감과 감동을 준다. 우린 누군가의 아들딸이거나, 자식이자 부모이기에 더욱 그렇다. 프레디와 그녀의 생모, 생부, 키아라와 애나벨, 그리고 리차드와 로라... 나도 그들 사이 어디쯤에서 여행 중인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