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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한 주노씨 Jan 04. 2019

눈떠보니 오십, 어쩌다보니 50

반백싱글 제주 이주민으로서의 천명(天命) 깨닫기

한국나이로 50이 됐다. 50보단 5학년이라고 해야 동년배들이 격하게 환영해줄 듯 한데, 더 격하게 그 환영을 거부하고 싶다. 만으론 아직 48이라고 말하기도 없어 보이는데, 벌써 말해 버렸다.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어하는 중년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2, 30대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반백이 된 걸 애써 무관심한 하고 있는 내 눈앞에 잔인한 광경이 펼쳐졌다. 즐겨보는 모바일 뉴스사이트 연령대가 바뀌었다. '어서와 50대는 처음이지?'하며 황금돼지새끼가 뛰놀고 있다.


구랍 마지막날 자정 직전과 직후 다음 뉴스페이지의 변화


사실 달라진 건 딱히 없다. 앞자리 숫자 하나 차이로 연애시장에서 땡처리 될  단 막연한 불안감, 그런 불안이 내 자신감이나 자존감에 악영향을 줄까하는 걱정이 마음 속 태풍을 일으킨다. 쓸데없는 걱정이고 성숙하지 못한 태도인 줄 알지만, 아홉수를 마치고 연령대가 바뀐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종의 통과의례인 듯 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존대말과 반말사용 결정여부를 위해 사전 나이 검문을 실시하는 사회에선 나이에 더욱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연애시장에서 물리적인 나이 하나만으로 실질적 차별(=Age Discrimination)을 받았던 건 40대부터인 듯하다. 눈은 아직 30대의 고퀄에 멈춰있는데 나이가 40대로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매력적인 이성에게 까임을 받기 시작한다. 정말 신기한 건 그때부터 슬슬 본능적인 욕구가 줄어들면서 외로움이 괴롭지만은 않아진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많은 관심이 지적인 분야로 향해지기 시작했고 통찰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며 글쓰기에 소질이 생긴다. 자기생존 및 합리화의 과정으로 유혹에 자연스레 초연해지다보니 40을 불혹(不惑)이라 지칭했나 보다.


이제 하늘의 명(命)을 깨닫는다는 50이 막 됐으니, 그 사명이 뭐가 될지 피부로 체감하는 날을 고대해 본다. 대개 50대는 자녀가 독립하면서 양육의 의무에서 해방되는 시기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삶으로 다시 온전하게 복귀했을 때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까? 반백에 씨없는 싱글인 나같은 부류들이 고전적인 천명을 깨닫긴 이미 글른 듯 하다. 게다가 서울을 떠나 낯선 제주에 살고 있으니 조만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될 그 무언가는 역설적으로 더욱 희소가치가 있어 보인다. 출판시장에선 아직까진 주류에서 벗어난 매우 작은 Nitch Market(=틈새시장)이지만 이 시장으로 진입할 3~40대 싱글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으니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


'눈떠보니 오십'은 아직은 30대인 라디오 PD가 이미 근사한 천명을 깨달은 5~70대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열거해 놓은 책이다. '눈떠보니 오십'이란 제목만 보면 왠지 나같은 철부지 50대에게 '넌 아직 괜찮아'라고 위로해 주는 내용일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 좌절감만 안겨주는 도덕 교과서다. 그나마 히로세 유코가 쓴 '어쩌다보니 50살이네요'는 작가가 50이 되어서 느낀 소회를 담담하게 적어내려갔기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기해년 새해 목표 중 하나가 브런치 글쓰기다. 지금처럼 중구난방이 아닌, 출판에디터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하나의 주제로 일관된 컨셉의 글을 써보려 한다. 제주와의 연결고리는 필수로 하되, 아직 50을 터치하지 않은 아래 세대들에게 교훈이 될만한 잠언서가 아닌, '나이 꽤나 처먹고 왜 그렇게 사니?'란 말에 분노하고 뒤로는 후회하는 '불타는 청춘'들의 치어리더, 그것이 나의 천명이 되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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