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한 회사에서의 첫 프로젝트
운영 중인 서비스의 플로우 개선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개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근거는 이랬어요.
윗 분의 지시로
그리고, 온/오프라인 조사 진행의 결과로(신청 절차가 복잡함, 서비스가 있는 줄 몰랐음)
IT에서 제품을 담당하고 있다면 물음표가 최소 3개는 나올 법한 근거일 거예요. '위에서 지시하면 무조건 해야 하나?', '어디가 복잡하고, 얼마나 그렇게 느꼈는데?' 등 근거를 뒷받침할 만한 내용이 없고, 두루뭉술한 배경에 비해 목표는 '월 신청 건 수 00건'으로 구체적이었어요. 이렇게 목표는 명확하지만 그 배경이 부실한 경우, 목표까지 삥 돌아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더 명확한 문제를 찾아야만 했어요.(다행히도 두 번째 근거에서 "유저가 불편해하고 있구나" 정도는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사용자의 문제 인지를 첫 단추로 데이터에 기반하여 제품을 개선했던 과정을 남겨보겠습니다.(다소 수직적인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의미한 개선을 목표로 진행했던 저의 경험과 이상을 담았습니다)
유저의 흔적에서 문제를 발견
신청 절차가 복잡하다는 문제를 발견했지만, 어떤 단계에서 그렇게 느낀 건지에 대해 들여다봐야 했어요.
앞서 근거로 활용한 조사를 진행했을 때 구체적인 질문을 했다면 보다 적확한 답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고, 내부 일정상 다시 진행하기엔 리스크가 있었어요. 그래서 DA툴에서 크게 두 가지 데이터를 들여다봤습니다.
1. 신청 단계의 단계별 퍼널(완료/이탈)
2. 이탈이 높았던 퍼널의 유저 액션(영역별 클릭)
현재 서비스의 주요 플로우에 대해 단계별 완료/이탈률을 확인했고, 문제를 정의했어요.
문제 1 : 메인 화면에서 [신청하기]를 시작하지 않는다.(이탈률 65%)
문제 2 : 약관 동의를 하지 않는다.(이탈률 79%)
문제 3 : 무언가 입력을 해야 하는 단계에서 포기한다.(신청/납부/계약서 등록(입력) 이탈률 평균 50%)
각 문제별 해결 방안을 가설로 세우기 전, 좀 더 적확한 가설 수립을 위해 문제의 화면 내 유저 액션을 트래킹 했고, 그 결과에 따라 문제를 자세하게 정의했어요.(, 인입된 CS를 분석하고 운영팀과의 미팅으로 실제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경험한 문제와 매칭되는지 검증했습니다)
1. 메인 화면에서 [신청하기]를 시작하지 않는 이유
ㄴ 메인 화면에서 서비스 소개(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있다.(리서치 결과 : 서비스 인지 부족 | 유저 세션 | 진입 후 바로 이탈하는 수)
2. 약관 동의를 하지 않는 이유
ㄴ 약관 동의 단계를 full page로 제공, 약관 체크 필수(화면 진입 유저 < 아무 액션을 하지 않고 나간 유저 | 이탈 유저 세션 평균 10초)
3. 무언가 입력을 해야 하는 단계에서 포기하는 이유
ㄴ 너무 많은 필수 정보 입력필드, 전월세(임대차) 계약서가 있어야 입력이 가능한 정보들이 대부분이다.(각 정보 입력 단계에서의 이탈률 대부분은 입력 필드를 누르고 난 후 이탈 | 계약서 필요한 단계에서는 대부분 바로 이탈)
이렇게 데이터에 기반하여 정의된 문제는 인입된 CS와 운영팀과의 미팅을 통해 사용자 관점에서 점점 좁혀 날카롭게 가공해 나갔습니다.
정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설 수립, 목표 달성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지표 설정, 구현을 위한 PRD를 작성, 배포 후 성과 측정까지 쭉 이어나갔어요.
앞서 정의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가설을 세웠습니다. 이 가설에 따라 PRD에 주요 기능을 작성했어요. PRD는 '1 Pager' 양식을 사용했고, 각 구현 담당자(디자이너, 개발자)들이 주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은 지양했습니다.(ex : 화면설계서처럼 UI가 확정되어 나오는 수준)
문제 1
가설 : 메인 화면에서 서비스 신청 시 얻을 수 있는 혜택이나 차별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자.
Action items
- 서비스 소개 시 수치화할 수 있는 내용은 숫자로 표현(ex : 결제일, 할인율, 수수료 등)
- 신청하기 버튼의 레벨을 상향(ex : Text banner > Primary CTA)
문제 2
가설 : 약관 동의 단계 진입 시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돋보이게 제공한다면, 오래 머물거나 이탈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갈 것이다.
Action items
- 약관 동의 화면의 레벨을 다운(ex : Full page > modal Pop-up)
- 약관 동의 체크 플로우 개선(ex : 약관 동의 체크 후 '다음' 버튼으로 두 번에 걸친 액션 > Primary CTA 사용하여 처리)
약관 동의의 경우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제공하는 가이드와 실제 사용자의 분쟁 내용 간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Legal issue 검토 및 충분한 팀 내 협의 후 결정해야 합니다.
문제 3
가설 : 정보 입력 단계를 간소화한다면, 신청 중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료할 것이다.
Action items
- 한 화면 내 많은 입력필드를 간편하게 입력할 수 있도록 개선(ex : 테슬러의 법칙을 활용한 Data Auto fill, Input field Auto focus 기능 추가)
- 유저가 간단한 단계를 먼저 경험할 수 있도록 플로우를 개선(ex : 피크엔드 법칙을 활용한 단계별 Ux writing 및 이벤트를 제공하여 피로도를 덜어줌)
- 동시에 신청 당시 생략할 수 있는 단계는 과감하게 뺄 수 있도록 구현(ex : 계약서 사진을 첨부하는 과정은 신청 후 진행해도 되기 때문에, 나중에 등록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
서비스 신청 완료 건 수를 높이자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유저가 서비스 신청을 많이 하는 거였어요.
따라서 집중해야 할 핵심 지표 또한 서비스 신청 완료 전환율로 잡았습니다.
월평균 50건에서 월평균 100건으로(기간 중 신청 후 해지한 수는 제외)
핵심 지표와 더불어 함께 봐야 할 지표로는 아래와 같이 정의했어요.
보조 지표
- 서비스 메인 화면을 포함한 각 단계별 PV 대비 CTR
- 총매출 중 해당 서비스 매출의 비율
가드레일 지표
- 신청 완료 후 해지한 고객의 수
- 신청 완료 고객의 Stickiness / User session
이전에는 서비스기획자로서 UI UX 설계에 집중했었는데, 이직한 회사에서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있었기 때문에 설계보다는 비즈니스 가치 and 사용자 가치 둘 다 잡아낼 수 있는 서비스를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PRD를 작성할 때도 기존의 요구사항이나 화면설계서처럼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지 않고, 해결 방안과 Action item을 기반으로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단, 구현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방법을 데일리로 공유하고, 설계 너머 운영이나 법무적인 관점에서 이슈는 없는지 확인하며 F/U 해나갔습니다.
문제를 명확히 하고, 모두가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니 비교적 빠르게 구현되었고, 곧 배포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 운영팀에게 위 내용을 공유하여 개선된 서비스 관련 인입된 CS를 2주마다 함께 논의하기로 했고, DA 툴에 검증할 수 있는 차트를 세팅해 놨습니다.
개선된 서비스를 유저가 사용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일/주/월 단위로 검증 지표들을 트래킹 하고, 발생하는 이슈에 대응하며 지금처럼 또 다른 다음을 위해 준비하려 합니다.
(As-is 대비 To-be 가 어떤 임팩트를 냈는지는 3개월 정도 뒤에 정리하여 글을 써 공유할 예정입니다)
이직 후 2달이 지난 지금에야 여유가 생겨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브런치를 들어와 보니 마지막으로 쓴 글이 벌써 1년이 다 되었더라고요... 글을 쓴 김에 예전에 썼던 글들을 가볍게 읽어봤습니다. 아직도 보면 웃음이 날 정도로 허접한 글임에도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을 받아서 하던 예전과 달리 일을 찾아서 하고 있는 요즘, '성장하고 있구나'라는 작은 마음이 느껴져 다행이네요. 아쉽지만 이상을 좇아 쓴 이 글도 나중에 보면 마찬가지로 부족함 가득한 글이겠지만, 단 한 명이라도 제 글을 보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행복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