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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변호사 Jan 30. 2019

생계형변호사 프롤로그

이모, 여기 삽질하며 사는 직딩 하나 추가요.




나는 변호사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변호사로 먹고 산지 여덟째 해를 맞았다.


길다면 길 수도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날에도 나는 어쩌다 보니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멀뚱히 앉아 밤을 맞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모니터 속 깜빡이는 커서를 응시하며 꿈틀꿈틀 눈알만 굴려대고 있었다.


할 일이 없어서 그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언젠가부터 당연히 야근을 예정해온 나날이 새삼 부질없었고, 어차피 야근 중인 마당에 농땡이 좀 부리는 게 대수냐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밀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냥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서 그러고 있었다.


문득 떠올려보니 늘 그랬듯 오늘 하루도 순탄치 않았다. 알람이 우렁차게 10번쯤 울린 뒤에야 오만상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일어났고, 만원 지하철에 짐짝처럼 실린 채 도를 닦는 기분으로 출근했다.


오전 내내, 세상 억울한 사연을 갖고 자기 편할 대로 찾아오는 고객님들과 입씨름을 하고 나니 턱이 욱신거려 점심은 가볍게 코로 마셨다. 밀려오는 식곤증에 잠시 꾸벅꾸벅 졸다가 문득 재판이 생각나 허둥지둥 달려갔지만 어쩐지 상대방 편만 들어주는 판사님이 야속해 한참을 씩씩대다 법원 문을 나섰다.


늦은 오후, 답도 없이 꽉 막힌 도로 위에 볕 쬐는 늙은 뱀 마냥 늘어져 있다 돌아오니 역시나 컴컴한 사무실에 홀로 남겨졌고, 알 수 없는 서글픔에 진한 성찰의 시간을 갖다 보니 어느새 한밤중이 되어버렸다.


나는 대체 왜 이 짓을 하고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영화 속 변호사 같은 정의와 인권의 수호자 코스프레는 진작 집어치웠다. 민간인에 불과한 변호사가 공익의 수호자 노릇만 줄기차게 한들 생계가 넉넉해지지는 않는다.


드라마 속 변호사 같은 우아하고 고상한 삶, 품격 있고 노블한 인생 따위도 이미 멀어진 지 오래다. 그런 건 오직 넉넉한 주머니가 있어야 가능할 뿐인데 내 현실은 당장 마트만 가도 프리미엄 필요 없고 1+1이 최고다. 그렇게 한정 수량 1+1을 손에 쥐고 득의만만해 돌아오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남들은 어떻게 살지?’. ‘나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니겠지?’ 같은 불안감이 가득하다.


그 날은 내가 변호사가 된 지 2,502일째 되는 날이었고, ‘앞으로 뭐해 먹고살지?’라는 생각을 2,502번째 한 날이었으며, 온라인 변호사 커뮤니티의 취업게시판을 2,502번째 방문해 또 한 번의 의미 없는 클릭질을 마친 날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21,573명(대한변호사협회 통계, 2018. 12. 31. 기준)에 달하는 이 땅의 변호사 중 1인에 불과한 나란 존재는 그야말로 먼지 같이 가볍고도 하찮아서 매일같이 앞으로의 날들을 걱정하고, 한편으론 크게 낭패 보는 일 없이 보내온 지난날에 안도하며 살고 있을 뿐이었다.




이 공간에는 ‘대한민국 법조 1번지’라는 몹시 거창하고 유난스러운 별칭을 가진 서울 서초동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아온 어느 변호사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단상을 담았다. 소위 ‘잘 나가는 변호사’와는 지구 12바퀴쯤의 거리가 있고, 존재감에는 지구 중력의 21,537분의 1조차 작용하지 않는 사람이 그저 지구의 산소나 축내며 보내온 많은 날 가운데 극히 단편을 아무렇게나 끄적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곳에는 난데없이 등장하여 친절하게 생활법률상식을 알려주는 변호사 같은 건 결코 없다. 아무렇게나 누덕누덕 기워놓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땅의 법률과 사법제도를 똘똘히 풀어 소개한다거나, 그 미래상을 대차게 제시하는 소장 법률가의 심오한 개똥철학 같은 것도 전혀 없다. 그런 건 오히려 지식인이나 유튜브를 찾는 게 훨씬 낫다.


또한, 이 곳에는 1년 365일 내내 아프기만 한 청춘들을 보듬어 줄 희망과 힐링의 메시지 역시 전혀 들어 있지 않다. 그럴 여유를 부리기엔 어지간한 청춘보다 내가 더 아픈 것 같다.


게다가, 매일이 고달픈 사람에게 “괜찮아 다 잘 될거야. 내가 네 상처를 토닥토닥해줄게.” 같은 대책 없는 감성 터치는 사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 잘 될거야."라는 허무맹랑한 주문만 왼다고 다 잘 될 일 같았으면 그건 어차피 다 잘 되게 되어 있는 일이라서 처음부터 힘들 거리가 못된다. 


그래서, 간밤에 심쿵했던 감성 터치를 대낮에 다시 보면 손발이 연탄불 위 오징어처럼 오그라드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하고 재수 없는 것 같은 불만이 차오를 때 낯 뜨거운 감성 멘트로 정신 승리하는 것은 언 발에 소변을 지리는 꼴과 같다. 그보다는 왠지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것만 같았던 남들의 보잘것없는 일상을 들여다봄으로써 무언가 알 수 없는 동지애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더 낫다.


그래서 이 곳에는 장마철 먹구름 뺨치는 엄청난 비관론과 염세주의로 똘똘 뭉친 채 오늘도 그저 생계를 위해 주야장천 삽질만 해대는 그저 그런 변호사의 삶을 툭 던져 놓았다. 어떤 면에서는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는 넋두리일 수도, 또 어떤 면에서는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의 재탕, 삼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하나마나한 잡담을 통해 사람들이 흔히 갖는 변호사에 대한 해묵은 오해와 편견이 다소나마 해소되었으면 좋겠다. 똑같은 생계형 직장인 중 1인의 보잘것없는 일상을 추려다가 뼈가 하얘지도록 우려내었을 뿐이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이 세상에 나만 애써 삽질하며 사는 것은 아니구나.’는 정도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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