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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 Salesman
한 30년 전쯤, 내가 아주 어린 땅꼬마이던 시절 파마(그 시절엔 '펌' 아니고 그냥 '파마'나 '빠마'다)를 하시려는 모친을 따라 미장원(그 시절엔 '헤어샵'은커녕 '미용실'이라고 부르는 사람조차 드물었다)에 갔다가 시답잖은 3류 잡지에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보았다.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대강의 줄거리를 더듬어보면, 어느 세일즈맨이 추운 겨울 하루 종일 외근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영업부장에게 그 날의 활동사항을 보고하려는데 부장이 의례히 건넨 커피 한잔에 온몸으로 토악질을 하며 쓰러졌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저 세일즈맨이 왜 커피 한잔에 떡실신이 되었을까?'인데, 땅꼬마 시절부터 배알이 꼬인 채로 빈정대기를 즐겨했던 나는 기특하게도 상사에 대한 '과잉충성' 개념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에, 그저 밖에서 덜덜 떨다 온 영업직원이 부장으로부터 커피를 하사 받자 그 감동을 온몸으로 정성을 다해 표현한 거라 결론지었다.
그러나, 내 빈정거림은 저 세일즈맨에 대한 모독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리의 주인공 세일즈맨은 하루 동안 수십 곳의 거래처를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예의상 건넨 커피 수십 잔을 바닥까지 들이켜는 엄청난 '근성'을 보였고, 덕분에 커피물이 목구멍에서 찰랑거리는 상태로 사무실에 복귀하였는데 멋모르는 부장이 또다시 커피를 내밀자 끝내 역류하는 신물을 이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졌던 것이다.
물론 지금이야 저런 식으로 세일즈 해봐야 세일즈가 될 리 없고, 오히려 세일즈맨이 미련하다는 식의 비난을 받거나 혹은 생뚱맞게 '세일즈맨의 인권을 생각하는 모임'이 발족하는 계기가 될 뿐이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저 세일즈맨의 열정이나 근성에 대해서는 경탄을 금할 수 없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점잖게 표현하면 생계유지)는 녹록지 않은 거라서 치열한 경쟁이 반드시 수반된다. 어찌 보면 헌팅 그라운드 같기도 한 이 먹거리 싸움판에서는 유능한 사람만이 끝까지 살아남는다.
물론 유능도 유능 나름인지라 여러 가지 의미의 '유능'들이 있겠지만 생계인의 현실에서 흔히들 말하는 '유능'이란 대체로 영업능력, 그러니까 일감을 따내고 돈을 벌어오는 능력의 대소로 판가름되곤 한다.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갈구하는 경쟁 구도에서 온갖 악재를 무릅쓰고 먹거리를 가져오는 사람은 싫어도 세상 유능하다고 평가받는데, 이런 식의 유능과 무능의 구분은 변호사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유능한 변호사'는 '훌륭한 변호사'와 다르다.
내가 일하는 서초동 바닥은 물 반 고기 반이다. 동네 어디를 기웃거리더라도 돌아다니는 사람의 절반은 의뢰인이고 나머지 절반은 변호사다.
아무리 코딱지만 한 건물이라도 법률사무소 하나쯤 안 들어와 있는 데가 없고, 지하철 역에는 도전적인 문구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쥔(혹은 팔짱을 낀) 모습의 변호사 광고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매해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어 이 동네에 들어오는데 그 수가 퇴장하는 변호사 수를 압도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영민한 국민성 덕에 어지간한 사건은 변호사 필요 없이 스스로 공부해서 처리하는 똘똘이도 많다.
그러니까 이 난잡한 바닥에서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1/n 변호사가 살아남으려면 내가 30년 전 잡지에서 만났던 세일즈맨 정도의 열정과 근성을 갖춘 유능은 필수다.
해박한 지식, 풍부한 경험, 올곧은 인성 등의 요건을 두루 갖춘 변호사가 훌륭한 변호사라면, 훌륭한 변호사의 요건 가운데 한두 가지만 갖춰도 유능한 변호사 소리는 들을 수 있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필요 없이 뛰어난 영업능력으로 굵직굵직한 사건만 골라 수임해오는 변호사 역시 이 바닥에서는 유능한 변호사로 불린다.
그러니 꼭 훌륭한 변호사까지는 될 필요 없고(물론 되면 좋다. 되지 말라 소린 아니다), 게다가 생계의 측면만 놓고 보면 오히려 막강한 영업력을 가진 유능한 변호사가 훌륭한 변호사보다 유리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극히 미화된 모습의 변호사가 자주 선보여지는데(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고 당장 붙잡아다 볼기짝을 두들겨도 시원찮을 거의 인간쓰레기로 묘사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때문인지 이 바닥의 생리를 몸소 체험치 못하고 잘 제작된 변호사의 이미지만 간접으로 경험한 사람들은 대체로 변호사가 세일즈와는 거리가 먼, 무언가 고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변호사가 할 줄 아는 게 뭔가. 그저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인데 그러다 보니 변호사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 그리고 어느 정도의 말발 같은 것들을 '법률서비스'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해서 팔고, 그 매출이익으로 먹고사는 일종의 자영업자일 뿐이다.
아, 이렇게 얘기하면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려 대법원 판례까지 거론하며, '변호사는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이 강조되는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거나, '변호사는 신뢰관계에 따라 위임 업무를 수행하고 대가를 받을 뿐, 상품을 팔아재끼는 상인이 아니다.'라고 버럭 성을 낼 것 같은데...
선비정신을 조금 빼고, 현실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생활인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변호사는 법률서비스라는 상품을 팔아서 먹고사는 자영업자'라는 표현과 뭐 그렇게 대단한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모든 변호사가 오로지 공익이라는 등불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면 이 세상은 머지않아 극락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게 될 것이고, 모든 변호사는 죽을 때 온몸에서 사리를 내뿜으며 성불할 테지만, 현실을 보면 어디 그렇게 되던가.
그렇다면, 이 바닥 자영업자일 뿐인 변호사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건 뭘까? 당연히 세일즈 즉, 영업이다.
적어도 생계유지의 측면에서 내가 보고 듣고 직접 경험한 변호사의 삶이란 다른 어느 직업 못지않은 영업전쟁 일색이고, 거의 대부분이 추구하는 공통된 목표란 좋게 말해서 사건 수임을 통한 매출 확대, 까놓고 말하면 '세일즈왕 등극'이다.
다소 원초적인 비유를 하자면, 비좁은 산등성이에 바글바글 모여사는 우리 마운틴고릴라들은 모두 우두머리 수컷이 되는 꿈을 꾸며 사는 거다.
30년 전에는 이름 석자 커다랗게 적은 간판을 걸어놓은 채 그저 사무실에서 고상하게 난이나 닦고 있어도 세상 억울한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왔을지 모르지만, 요즘 같은 때에 개업 변호사가 저러고 있다면 그는 30일 뒤 자기가 키운 난처럼 빼빼 마른 채 사무실 바닥을 기어 다니게 된다.
실제로 이 동네 변호사들의 세일즈 방법도 꽤나 다양해서, 타고난 붙임성에 갈고닦은 음주가무 테크닉을 더해 거미줄 같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법, 지하철 광고, 티비나 라디오 출연, 기타 강연 등 기회를 십분 활용해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 SNS나 블로그, 홈페이지, 더 나아가 1인 라이브 방송을 활용해 온라인 인싸가 되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세상에 나 혼자 변호사 해 먹는 것도 아니고, 내 옆집도 변호사, 그 옆집도 변호사, 그 윗집, 아랫집도 다 변호사다 보니 갖은 노력을 기울여 영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과연 우두머리 수컷 자리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직장인은 누구나 고달프지만 자영업자는 특히 더 고달프다. 변호사도 직장인이고 (궁극적으로는) 자영업자이니 똑같은 고민을 달고 산다. 월말은 늘 왜 그리도 빨리 오는지 이 무렵이면 매일매일이 결제일이고 깃털만치 가벼운 통장 밑에는 누군가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은 것만 같다.
그래서, 변호사도 최소한 위에서 말한 정도의 정성을 기울여 세일즈에 나선다.
공익이라든지, 고상함 같은 것도 곳간에 뭐 좀 든 게 있어야 비로소 찾게 되기 마련이다. 매달 사무실 임대료라든지 월급 걱정 같은 건 안 해도 되는 수준은 되어야 비로소 이 한 몸 바쳐 세상을 극락으로 바꿔 보든지 말든지 할 거고 어쩐지 허전한 사무실 한켠에 난초를 놓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
이쯤 되면, 수천 년 전 관중(유명한 사자성어 '관포지교'에 나오는 그 '관'씨 성 쓰시는 분)이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알고 입고 먹는 게 풍족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라고 말한 것은 희대의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의 모든 세일즈맨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