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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May 01. 2020

제미니 맨 - 설정과 기술만 앙상하게 남은 SF

Gemini Man, 2019


이 영화에 정작 필요했던 건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제미니 맨'은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의 전형을 답습하는 데 급급하다. 그마저도 몰입 요소가 부족해 지루하게 전개된다. 주인공과 악당 모두 동기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굳이 클론을 만들어 요원으로 활용하는 이유, 그 클론으로 하여금 원본에 해당하는 주인공을 쫓게 하는 이유가 확실치 않다. 이야기에 너무 큰 구멍이 나 있어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는다.

그나마 영화에서 의미 있는 장면이 있다면 주인공과 클론이 마주하는 순간일 것이다. 젊은 시절의 자신과 대결하는 주인공은 과거의 죄의식과 싸우는 것이고, 반대로 클론의 입장에서는 나이 든 자신, 미래의 자신이자 자기 존재의 근원과 대결하는 셈이니, 온갖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딱 알맞은 구도다. 어쩌면 '제미니 맨'은 이 구도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걸 포기한 영화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온갖 철학적 해석들이 싹트지만 곧바로 시들어버리고 만다. 남은 건 앙상한 설정들뿐이다.



말 그대로 죽음 위에서의 대결을 펼치는 카타콤 액션 신은 그런 의미에서 참 아쉽고 아까운 장면이다. 물론 가장 아까운 것은 이 영화의 기술적 성취들이다. '제미니 맨'의 비주얼은 현 CG 기술의 정점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도무지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엉성한 이야기 전개 탓에, 첨단 시각효과로 빚어낸 디지털 캐릭터마저 우스꽝스럽게 보일 지경이다.

신기술에 대한 열정을 높이 살 만하지만 이안 감독의 SF는 늘 참아내기 어렵다. '제미니 맨'을 통해 우리는 이안 감독이 SF에 영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각본을 맡은 데이비드 베니오프가 과대평가받은 스토리텔러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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