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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May 05. 2020

백두산(2019) - 혼자 폭발하고 끝나는 백두산


영화 '백두산'의 주인공은 정말 백두산이다. 긴 러닝타임 내내 제대로 쌓아올린 이야기가 없다 보니, 정말 백두산만 혼자 부글부글 끓다 폭발하고 끝난다. 


하긴 애초부터 '백두산'은 다른 걸 보여줄 생각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건물 붕괴, 화산 폭발 장면을 더 실제처럼 정교하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영화의 최대 목적이었을 뿐, 내러티브나 캐릭터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성의한 짜깁기식 이야기에, 배우들의 전작 캐릭터를 답습하는 영화가 나왔을 리 없다.



물론 클리셰 범벅인 영화가 의외로 괜찮을 때도 있다. 기존의 성공 공식을 잘 따라가는 영화들을 보면 새로움은 없지만 안정감이 있다. 

하지만 '백두산'은 어떤 영화를 모방해야 하는지조차 갈팡질팡한다. 재난 영화의 외피만 둘렀을 뿐 인물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재난 영화의 전개를 따르지 않고, 대신 20세기 말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언저리를 맴돈다. '백두산'의 이야기와 장면들에서 '더 록(1996)', '아마겟돈(1998)', '딥 임팩트(1998)'의 흔적을 읽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덱스터 스튜디오가 가진 그릇을 감안할 때, 레퍼런스가 되는 영화 하나를 잡고 이를 제대로 한국화하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두산'은 너무 안일했고, 스스로의 영화적 완성도에 대해 무신경했다. 



'백두산'에서는 재난의 위험에 대한 적절한 환기도, 이를 벗어나고자 사투하는 인간상 제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류적 난제를 해결하는 '아마겟돈'이나 '딥 임팩트'의 이야기 틀도 제대로 끌어오지 못한다. 영화는 각 인물이 처한 상황을 풀어내는 옴니버스식 구성도, 하정우와 이병헌의 버디 무비도 아닌 어딘가에서 계속 헤매고 있을 뿐이다. 쓸데없는 한국식 신파까지 끼워 넣었음에도 관객을 제대로 울리지도 못한다. 


그러니 영화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맥락 없이 던지는 배우의 애드리브에도 전혀 공감이 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배우들이 주어진 재료들을 가지고 고군분투하지만, 유머든 감동이든 배우들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타율이 높지 않다.


항상 드는 의문 한 가지. 왜 이런 영화들은 항상 대재앙을 화면으로 담는 데만 급급하다가 정작 영화 자체가 재앙이 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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