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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Mar 14. 2017

나이트크롤러 -언젠가 만나게 될 밤의 괴물

Nightcrawler, 2014

* 영화의 내용과 결말을 직접적으로 담고 있는 글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읽으시는 것을 권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밤이 참 무서웠다. 어둠 뒤편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온갖 상상 속 괴물들이 밤만 되면 기승을 부렸다. 밤길을 혼자 걸을 일이 있으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됐다. 상상력이 퇴화된 지금도 여전히 밤은 무섭다. 상상보다 더 무서운 게 현실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밤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 정확하게는 밤의 도시가 토해낸 것들을 먹고사는 짐승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상상 속의 밤보다 현실의 밤이 더 가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 밤의 세상에는 원칙도 없고, 도덕도 없다. 밤이 쏟아내는 온갖 쓰레기와 토사물들이 낮이 되면 돈으로 환산된다. 밤 사이 벌어진 교통사고, 화재, 폭행, 총격전을 비롯한 온갖 유혈사태가 특종을 찍어 방송국에 팔아넘기는 '나이트 크롤러'들에게는 돈벌이가 된다. 밤 사이 철조망과 맨홀 뚜껑을 뜯어 고물상에 팔아넘기던 주인공 루이스는 이게 자신이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사실 그가 영화 내내 보여주는 모든 행위는 훔치는 행위다. 이를 통해 영화는 정보를 얻어낸다는 것이 무언가를 훔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얘기한다. '나이트 크롤러'들은 마치 죽어가는 초식동물에게 달려드는 하이에나처럼 각종 사고의 희생자들에게 달려들어 훔치고 빼앗는다. 밤은 말 그대로 야생의 세계로 묘사된다.


그리고, '나이트 크롤러'를 통해 밤의 이야기들은 아무렇지 않게 낮으로 흘러든다. 마치 쥐가 병균을 옮기는 것처럼 말이다. 밤새 벌어진 사건사고들은 마치 대단한 일인 양 과장되어 낮의 뉴스가 된다. 영화가 시작된 지 10분이 지나서야 해가 뜨고, 아침이 밝아 오는 것과 함께 온갖 쓸모없는 정보들도 잠을 깬다. 삶에 유용한 정보인 것처럼 포장되어 쏟아지는 소음들이 전선과 전파를 타고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간다. 마치 거대한 생명이 태동해 온몸에 피가 돌기 시작하는 것처럼,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처럼 도시가 잠에서 깨어난다.



미디어를 통해 사실들이 그럴듯한 스토리로 각색되고, 거짓들이 진실이 되는 과정은 사실 별로 놀랍지 않다.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 뉴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무기로, 뉴스를 이용하는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비일비재하다.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미디어는 곧 영화 속 세계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어두운 뉴스 편집실에서 이리저리 짜 맞춰진 영상들은 밝은 스튜디오로 전달된다. 번지르르한 황금색 넥타이를 맨 앵커는 마치 진실을 얘기하는 것처럼 뉴스를 포장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밤의 세계에서 가공되고 조작된 것일 뿐이다.



이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루이스는 '나이트 크롤러'로서의 삶을 살며, 도시에 기생하는 존재에서 도시를 쥐고 흔드는 거대한 괴물로 성장한다. 제이크 질렌할은 겁에 질린 듯 어리숙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온갖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루이스라는 인물을 실나게 연기한다. 루이스는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배운 인물로, 시종일관 어디선가 보고 들은 정보와 표현들을 마구 주워섬긴다. 결국 무가치한 정보와 뉴스들이 모여 루이스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이 도시가 만들어낸 괴물인 셈이다.


그래서 모든 뉴스를 열심히 보고 듣는 루이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하기까지 하다. 도시의 쓰레기들을 먹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괴물의 모습이 중첩되기 때문이다. 그가 취재한 뉴스 영상들이 하나 둘 쌓일 때마다, 사실이 아닌 사실들이 쌓여가고, 괴물은 더 성장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욕망을 계속 충족시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담의 틀을 취하고 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끔찍한 성장 영화인 것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인생 최악의 날에 그를, 혹은 그와 같은 괴물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건 얼마든지 오늘 밤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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