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Sniper, 2014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날이 얼마나 될까.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은 마치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데 골몰한다. 총알과 폭탄이 없는 전쟁은 또 어떠한가. 손익 계산과 치열한 경쟁은 오늘도 사람들을 죽이고 살린다. 삶이 전쟁 그 자체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냉혹하고 잔인한 전쟁도 결국 일이 되고, 생활이 되고, 삶의 일부분이 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한 인물의 삶을 되짚는다. 아군은 그를 영웅으로 칭송하지만, 그는 그저 남들과 똑같은 영혼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저 내 편, 내 가족을 지키겠다는 마음이었던 그는, 누군가를 쏘아 죽여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단순한 적개심이 애국심으로 포장되고, 다시 조절할 수 없는 분노가 되어 돌아온다. 전쟁은 서서히 그의 영혼을 잠식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전쟁으로 인해 무너지는 개인을 조명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반전(反戰) 메시지를 취하진 않는다. 전쟁을 전시하거나 옹호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고발하거나 반대하지도 않는다. 영화 속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영광도 원망도 없다. 전쟁은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속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며 영혼을 갉아먹는다.
결국 전쟁보다 더 전쟁 같은 건, 전쟁 이후의 삶이다. 영화는 이를 냉정한 시선으로 지켜볼 뿐이다. 크리스 카일은 과연 이 전쟁터에서 승자이자 영웅이었을까? 아니면 희생양이었을까? 영화는 섣불리 답을 내리지 않는다. 이 영화의 시선은 단 한 발의 발사를 위해 고뇌하는 스나이퍼의 그것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