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조각 : 너의 수학

Series of Dreams

by Junseo


칠판 앞에 서있었다. 도무지 풀 수 없을 것 같은 수학 문제가 길게 적혀 있었다. 이미 뒤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문제를 풀어볼 생각도 하기 전에 진작부터 창피할 대로 창피해진 상태가 되었다. 꿈에서는 이런 순간이 가장 현실처럼 느껴진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수치심이 극에 달하면 더 이상 이게 꿈이라는 자각을 하기 힘들어진다. 아예 문제를 읽을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쯤 한 여자아이가 내 옆에 있었다. 나 대신 지목되어 나온 것인지, 나를 이 수렁에서 구해주려 자원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손에서 부스러지기 직전인 분필을 대신 잡아들고 아무렇지 않게 문제를 풀어 내려갔다. 마지막 답이 도출되는 순간은 짜릿하기까지 했다.


내게는 마치 몇 세기에 걸쳐 전해져온 수학적 난제가 풀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답이 정답인지는 고사하고, 풀이 과정 중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문제와 답을 설명하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후련한 것인지, 창피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꿈속의 나는 그전부터였는지, 아니면 대신 문제를 풀어주고부터인지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리에 들어와 앉았는데, 고작 두 줄 앞쯤에 앉아있는 그녀와의 거리가 왠지 멀게 느껴졌다. 아무리 손을 뻗고 불러봐도 닿지 않을 거리처럼 보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예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 같았다.


그녀는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것 같았고,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다른 건물에 있는 교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꿈의 배경이 고등학교인 줄 알았으나, 실은 대학이었는지도) 그녀의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시험 끝나고 그 반 1등에게 찍은 문제의 답을 물어보는 아이들처럼.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친절한 표정이었다. 아까 그 문제를 설명해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시 들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다가가지 못 했다. 옆에서 얼굴이 하얀 웬 녀석이 무표정한 척하지만, 실은 수줍은 표정으로 날 툭 쳤다. 그녀와 같은 반이냐며, 쪽지를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도 안 친하다고, 직접 전하라고 하려는 사이, 그런 녀석들이 늘 그렇듯 급히 자리를 떠났다. 내가 이걸 왜 전해주겠냐 하는 마음으로 펼친 쪽지에는,



수학 문제가 적혀 있었다. 단순히 사칙연산의 문제가 아닌, 수학의 문제였다. 머릿속이 칠판 앞에 섰을 때보다 더 복잡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꿈속에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일까, 왜 나는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는 것일까'하는 고민들. 나의 모자람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고, 나만 못 자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꿈에서 깨고 보니, 애초에 섞일 수 없는 세계에 있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내가 아닌 너의 언어는 불가해의 영역이니까. 수학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너의 언어, 내가 있을 수 없는 세계의 언어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애초에 수학을 싫어하기도 했다)


내가 너의 문제를 풀어내기에 모자란 게 아니라, 그저 그건 너의 수학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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