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of Dreams
문제를 풀어볼 생각도 하기 전에 진작부터 창피할 대로 창피해진 상태가 되었다. 꿈에서는 이런 순간이 가장 현실처럼 느껴진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수치심이 극에 달하면 더 이상 이게 꿈이라는 자각을 하기 힘들어진다. 아예 문제를 읽을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쯤 한 여자아이가 내 옆에 있었다. 나 대신 지목되어 나온 것인지, 나를 이 수렁에서 구해주려 자원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손에서 부스러지기 직전인 분필을 대신 잡아들고 아무렇지 않게 문제를 풀어 내려갔다. 마지막 답이 도출되는 순간은 짜릿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답이 정답인지는 고사하고, 풀이 과정 중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문제와 답을 설명하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후련한 것인지, 창피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꿈속의 나는 그전부터였는지, 아니면 대신 문제를 풀어주고부터인지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리에 들어와 앉았는데, 고작 두 줄 앞쯤에 앉아있는 그녀와의 거리가 왠지 멀게 느껴졌다. 아무리 손을 뻗고 불러봐도 닿지 않을 거리처럼 보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예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다른 건물에 있는 교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꿈의 배경이 고등학교인 줄 알았으나, 실은 대학이었는지도) 그녀의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시험 끝나고 그 반 1등에게 찍은 문제의 답을 물어보는 아이들처럼.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친절한 표정이었다. 아까 그 문제를 설명해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시 들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다가가지 못 했다. 옆에서 얼굴이 하얀 웬 녀석이 무표정한 척하지만, 실은 수줍은 표정으로 날 툭 쳤다. 그녀와 같은 반이냐며, 쪽지를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도 안 친하다고, 직접 전하라고 하려는 사이, 그런 녀석들이 늘 그렇듯 급히 자리를 떠났다. 내가 이걸 왜 전해주겠냐 하는 마음으로 펼친 쪽지에는,
꿈속에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일까, 왜 나는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는 것일까'하는 고민들. 나의 모자람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고, 나만 못 자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꿈에서 깨고 보니, 애초에 섞일 수 없는 세계에 있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내가 아닌 너의 언어는 불가해의 영역이니까. 수학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너의 언어, 내가 있을 수 없는 세계의 언어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애초에 수학을 싫어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