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of Dreams
물이 더 차게 느껴졌다.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물살이 마치 내 몸에서 흘러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수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 물 위에 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입가의 수면이 파르르 떨렸다. 그저 지극히도 당연한 호흡에 불과했지만, 왠지 모르게 두려움이 섞여 모든 게 떨고 있는 것 같았다. 꽤나 자연스러운 자유형 영법으로 헤엄을 치고 있었지만, 내내 불안했다. 멈추는 순간 가라앉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누가 감아놓은 태엽장치 덕에 물 위에 떠 있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태엽이 멈추는 순간 다신 떠오르지 못할 것 같았다. 태엽이 거의 망가지기 직전까지 계속 스스로 조이고 또 조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전에 네가 기다리고 있을 뭍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만 자꾸 떠올랐다. 밤이었지만 달빛 탓인지 물 위는 그리 어둡지 않았다. 하지만 물속은 칠흑 같은 어둠. 달빛이 일렁이는 저편에 뭍이 있길 바라며 쉬지 않고 헤엄을 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그곳이 호수인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고, 어디로든 가라앉지 않고 버텨낸다면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마치 모터보트처럼 빠른 속도로 물을 가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빨라지면 이 어둠마저도 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영을 못하던 사람치고는 꽤 헤엄이 빠른 게 아닌가 하는 우쭐한 마음이 두려움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지금까지 내가 수영을 못하는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이렇게 수영을 잘하는데, 내가 미처 몰랐던 거구나. 너를 다시 만나게 되면, 더 이상 난 물이 무섭지 않다고,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처 몰랐지만, 어쩌면 내가 물 위에서 가장 빠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해야지.
어린 시절 난 꽤 오래 수영을 배웠었다. 아니, 배워보려고 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방학이 되면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고, 여름방학에 주어진 단골 과제는 수영이었다. 결론적으로 난 끝까지 초급반, 혹은 수영을 못하는 아이들을 따로 떼놓은 무리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판을 잡고는 곧잘 헤엄을 치는 편이었지만, 그걸 놓는 순간 어쩔 줄 몰라 허우적거리다 물을 먹곤 했다. 수영장 가운데가 더 깊은 구조라는 걸 알게 된 뒤부터는 아예 레인을 따라 헤엄을 칠 수 없었다. 가운데 레인에서 물에 뛰어들면 나도 모르게 가장자리를 향해 헤엄을 쳤고, 물을 그만 먹어보겠다고 안전봉을 잡는 나를 수영 강사들은 계속 다시 물속으로 밀어 넣었었다. 두려움을 이겨내라는 뜻이었겠지만, 내게는 물고문이 따로 없었다. 나의 수영에 대한 트라우마는 물에 대한 본질적인 두려움보다 당시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려움보다도 앞서는 건 바로 부끄러움이었다. 물이 코로 들어가면 종일 매웠다. 하지만 그 고통보다도 수영장에 있는 내내 느꼈던 모멸감이 더 매웠다. 발가벗겨진 기분이나 다를 게 없었다. 물이 무서웠던 게 아니라 내가 물을 무서워하는 겁쟁이라는 걸 들키는 게 무서웠다. 가늠이 되지 않는 물의 깊이보다도 두려운 건 내가 알 수 없는 남들의 생각이었다. 마치 인간 보트처럼 수영을 할 수 있게 된다 한들 그 두려움은 꿈속에서도 이겨낼 수 없는 것이었나 보다.
꿈은 내가 뭘 두려워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다. 꽁꽁 숨겨두었던 두려움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악몽이라는 외피를 둘러 내어놓는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처럼 꿈이 스튜디오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이라면 차라리 좋을 텐데, 내 머릿속의 그들은 그들은 유쾌한 극단이라기보다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지배하는 숨은 권력, 빅브라더에 가깝다. 약점 중에서도 약점만 골라낸 악몽 앞에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