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of Dreams
복잡한 사연이 있었는데, 하나 확실한 건 내가 억울함을 토로할 염치도 없는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꿈속의 난 일정한 직업 없이 누군가의 끄나풀이나 하는 사람이었고, 자격도 없이 우쭐거릴 줄만 아는 인생이었다. 한 마디로 창피를 당해도 할 말 없는 하찮은 존재, 적어도 꿈속에서 난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과 종일 싸우고도 모자라, 아내와도 전화로 한바탕 다투고 들어가는 길이었다. 꿈에서 깨기도 전에 싸운 이유가 기억나지 않았던 건 분명 그게 싸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격지심과 자괴감의 중간 언저리에서, 네가 아니라 내가 더 미웠기 때문일 것이다.
일터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은 무척이나 지저분했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타서, 앉은 것도, 일어선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한참을 있어야 했다. 계속 헛구역질이 났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이렇게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필사적으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 찌푸린 얼굴들에 주먹질을 하고 싶은 충동이 끌어 올랐다. 잠시 후 버스는 나를 마치 짐짝처럼 휙 부려놓고 떠났다. 나는 한참을 무중력 공간에 있었던 사람처럼 휘청휘청 걸었다.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꿈속에서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비가 올 것 같다며 막 뛰어가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밤이었기 때문인지, 꿈이었기 때문인지, 도통 하늘과 구름이 구분되지 않았다. 이것은 아침도 아니고, 저녁도 아니고, 낮도 밤도 아닌 하늘. 그저 온통 붉은빛이었다. 비를 맞아도 관계없는 차림이었지만, 남들이 뛰기에 함께 뛰었다. 얼마 동안 달려왔을까, 집 근처까지 와서 내가 맞닥뜨린 것은 더 붉은빛이었다.
집 바로 옆에 왜 이리 큰 빌딩이 있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불길은 이미 커질 대로 커져 걷잡을 수 없었다. 경비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저 우왕좌왕할 뿐 불을 끄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불이 금방이라도 옆 건물로, 우리 집으로 번질 것만 같았다. 이내 비상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불구경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내 몸은 이미 미친 듯이 집을 향해 뛰고 있었다. 벌써 불이 번졌으면 어떡하지? 아내가 미처 못 빠져나왔으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이 비상 벨보다도 빠른 속도로 머리를 때렸다.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내내 연기가 계속 뒤따라오는 것 같았다. 오래된 아파트의 계단에는 누군가 내어놓은 온갖 세간살이와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모두 몸으로 깨부숴야 할 관문이었고,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들이었다. 뛰어 내려오는 사람들까지 섞여, 그곳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난 그저 오로지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허우적거렸다.
위층에서 날 먼저 알아본 아내의 표정이 보였다. 내가 괜찮으냐고 하자 괜찮다고 했고, 내가 미안하다 하자 미안하다 했다. 아주 큰 안도감과 그보다 큰 위로가 파도처럼 연이어 밀려왔다. 불길이 여기까지 오진 않을 거라는 이유 없는 안도와 오더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상관없을 것이라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