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omic Blonde, 2017
일종의 변종 스파이물의 외피를 쓴 액션 영화다. 샤를리즈 테론이 그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배역을 맡아 몸을 던지며 열연한다. 냉전 종식 직전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펑크 문화를 기반으로 한 화면에 강렬한 액션 시퀀스를 섞어 일단 눈이 즐겁다. 하지만 액션 외에 다른 요소들은 다소 겉멋처럼 보인다.
이리저리 뒤섞은 플롯은 정돈이 잘 되지 않아, 피아식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냉혹한 스파이의 세계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 '아토믹 블론드'는 차라리 샤를리즈 테론 버전의 '존 윅'에 가깝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데이빗 레이치 감독이 다시 한번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한다. 특히 만신창이가 되도록 싸우는 계단 액션 시퀀스는 관객도 함께 숨을 고르며 보게 만들 만큼 압도적이다. 하지만 액션이 있어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본 시리즈 이후 자주 차용되는 주변 사물 활용 액션은 다소 억지스럽고, 전반적인 움직임은 요새 액션 영화 트렌드에 비해 좀 굼뜬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큰 문제는 액션을 위해 만신창이가 된 플롯이다. 누더기를 기우듯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이야기를 대충 이어붙였다. 시계열적으로 늘어놓았어도 변변찮았을 플롯을 액자 구성에 넣으니 더 엉망이 됐다. 덕분에 이야기는 지루하고, 이미지는 아무런 의미 없이 소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