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말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전'에서 가장 독하게 다가오는 건 이미지들이다. 마치 긴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미장센과 색감에 힘을 준 장면들이 계속 이어진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다. 때깔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것인지 의아한 장면들이 많다. 멋은 있지만 의도가 읽히지 않으니, 알맹이 없는 멋진 껍데기들이 누더기처럼 마구 기워져 있는 느낌이다.
'독전'은 영화 홍보 내내 강렬한 캐릭터들을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이미지로 만들어진 허상일 뿐, 이야기 속에서의 인물들은 그리 강렬하지 않다. 충분한 필요 없이 등장해 최대한 독해 보이는 의상과 분장으로 치장하고 있을 뿐, 플롯 상에서는 그저 소모품에 불과하다. 악당과 미치광이들이 열심히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이야기는 길을 잃는다. 미스터리의 핵심은 이 선생을 찾는 것인데, 인물들은 납득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조원호(조진웅 扮)는 왜 이런 방식으로 수사를 하는지, 서영락(류준열 扮)은 왜 이렇게 협조를 하는지 개연성이 한참 부족하다. 점조직이라 악당들이 서로 잘 모른다는 설정은 편리할 때만 작동된다.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된 캐릭터들은 굳이 없어도 무방한 인물들이 되어 버린다.
굳이 어렵게 돌아가는 플롯이 된 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대로 됐는지는 의문이다. '독전'은 큰 틀에서 보면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경찰은 서로 본 적 없는 악당들을 속여 이 선생을 잡으려 하고, 악당은 아무도 본 적 없는 이 선생이 되려 한다. 인물들은 각자 자기만의 신념,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그 믿음에 매달리다 허망한 결말을 맞는다. 이걸 표현하기 위해, 서영락과 조원호는 영화 내내 사랑싸움하는 연인처럼 서로 자기를 믿네 안 믿네 난리를 치고, 브라이언(차승원 扮)은 어설프게 목회자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맹목적인 믿음이 파멸을 낳는다'는 메시지가 대체 뭔 의미가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전달하는 방식도 일차원적이라 헛웃음을 짓게 된다.
정체성 소재를 끌어와 젠체하는 꼴은 어떠한가. 진짜 서영락은 아니지만 서영락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고아 출신 주인공이, 알고 보니 마약 조직의 잔혹한 보스였으나, 더 알고 보니 자기가 누군지도 몰라 괴로워하는 인물이었다니. 반전도 좀 있고 주인공이 적당히 비운에 빠진 척 한다고 해서 갑자기 누아르가 완성되는 게 아니다. 그건 그저 구멍 난 개연성을 허세로 메우고, 대단한 장르물이라도 되는 양 관객을 기만하는 것이다. '기만'이란 남의 믿음을 이용해 속여 넘긴다는 뜻이다. '독전'은 '믿음'을 다루는 척하면서 '기만'으로만 일관하는 이야기다. 독해 보이는 이미지로 한 번, 있어 보이는 이야기로 또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