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e Girl, 2014
* 이 글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슨 생각 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대화가 끊기고, 서로 말이 없어지면, 어김 없이 꺼냈던 말이다. 그냥 할 말이 없어서 나온 말이기도 했고, 정말 궁금해서 묻는 말이기도 했다. 아무 말 없는 순간들마다 너의 생각이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다. 내 생각보다도 더, 남의 생각이 궁금했다. 남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너의 시선으로 볼 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의 첫 장면 역시 그렇게 시작한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하루를 시작한 닉(벤 애플렉 扮)은 이내 아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수사가 거듭 되고 사람들이 어린 시절 동화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 扮)의 실종에 관심을 가질수록, 평온하게만 보였던 부부의 일상 이면에 감춰져 있던 균열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화는 크게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은폐한 것인지, 아니면 아내가 남편에게 누명을 씌우고 사라진 것인지를 놓고 진실 공방의 양상으로 흘러간다. 미세한 균열인 줄만 알았던 것들은 생각보다 크게 벌어져 있었고, 지금껏 위태롭게 쌓아온 5년의 결혼 생활은 한번에 무너져 버린다.
그러나, 과연 누구의 이야기가 맞는지 공방이 거듭될수록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대신 어떤 이야기가 더 그럴 듯 하게 보이는지,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사연이 더 동정할 만한지 여부에 주인공 닉의 운명이 좌지우지 된다. 미디어는 점점 더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그로 인해 닉과 에이미의 이야기는 점점 더 왜곡된 방향으로 단단해진다. 그리고 대중들은 드라마나 리얼리티쇼를 보듯 그들의 사연을 소비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기 시작한다.
닉이 TV 인터뷰를 통해 여론의 동정에 호소하는 장면에 이르면, 이제 나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은 단계에 이른다. 모든 게 남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이 된다. 닉의 입장에서 보면 이 모든 이야기들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 아내가 설계해놓은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 진실이라면 모든 게 진실이고, 거짓이라면 전부 거짓일 뿐이다.
어찌 보면 닉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에이미는 이미 유년시절부터 그녀의 부모가 쓴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동화 속 허구와 실제 현실의 괴리을 안고 살아왔다. 그녀는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이야기에 맞춰 자신을 자르고 깎아내는 데 너무나 익숙하다. 비록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자괴감과 열등감이라는 괴물도 점점 더 크게 자라나고 말았지만 말이다.
사실 거짓말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 하게도 나조차도 그것을 정말 진실이라고 믿어야 '완벽한 거짓말'로 완성된다. 어쩌면 에이미는 평생을 허구와 함께 살아온 덕분에 더 완벽한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늘 남의 시선, 남의 생각 속에서 살아온 에이미는 본인이 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 그럴싸한 남의 이야기에 자신을 끼워 넣는 데 성공한다. (실제로 러닝타임 내내 에이미는 부단하게 자기가 만들어낸 상황과 이야기에 맞춰 자신의 몸을 깎고 맞춘다. 단순히 도주를 위해 머리를 염색하고 살을 찌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망치로 얼굴을 자해해 사연 있는 여성 시늉을 하는가 하면, 전 남자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전의 몸매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 끔찍한 결말에 한데 엮여버린 닉에게는 섬뜩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에이미의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에이미가 피칠갑이 된 몸을 닦아내는 샤워신에서 그녀의 몸은 팜므파탈의 그것이라기 보다는 불쌍한 피해자의 그것처럼 비루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얼핏 나의 이야기가 맞는지, 너의 이야기가 맞는지 다투는 치열한 싸움 같이 보이지만, 모두가 속고 속이는 가운데 결국에는 나조차 속아버린, 승자가 없는 게임으로 끝을 맺는다. 모두 남의 이야기 속에 사는 등장인물로 전락해버린 씁쓸한 엔딩인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허구에 대한 열등감, 그만큼 완벽한 인생을 살지 못하는 자괴감을 남편 탓으로 돌리고 자기 인생을 주도해보려 했으나, 결국에는 그 이야기에 삼켜져 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다. 영화는 대중의 동정과 지지를 통해 거짓이 진실이 되어가는 과정, 거짓 이야기가 진짜 인생이 되어가는 과정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가끔 기사에서 언급되는 누군가의 사연, TV 다큐멘터리의 제한된 시간에 엮인 누군가의 인생을 보면, 타인의 시선에 의한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새삼 깨닫곤 한다. 내 인생은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우리 모두는 타인의 시선 안에 갇혀 산다. 분명 남에게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대부분 내 인생을 남에게 좀더 그럴듯한 이야기로 포장하고 싶어하고, 이 욕구는 점점 더 우리를 옭아맨다.
어쩌면, 결국 인생이란 남에게 나의 이야기가 옳다고, 혹은 꽤 그럴 듯 하다고 주장하고 관철시켜 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결국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