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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Oct 08. 2018

더 포스트 - 낙종에서 건진 이야기

The Post, 2017




천의무봉의 솜씨로 시대의 엄중한 메시지를 담아낸다. 스필버그 감독은 스스로 만든 법칙을 충실히 재현하며 물 흐르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 역시 언제나 그렇듯 흡입력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더 포스트'는 워싱턴 포스트의 행보를 통해 언론의 책무가 무엇인지 밝힘과 동시에, 최초의 여성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 扮)의 이야기를 통해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성장 서사를 풀어낸다.


이 영화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역사가 아니라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뉴욕 타임스의 특종이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의 낙종에 대해 다룬다. 베트남전은 미디어와 함께 한 최초의 전쟁이자, 말 그대로 미디어의 전쟁이기도 했다. 1971년 뉴욕 타임스가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통해 베트남전의 비밀을 들춰내자 미 정부는 보도를 금지시킨다. 뒤늦게 관련 기밀문서 입수에 성공한 워싱턴 포스트 편집장 벤(톰 행크스 扮)은 보도를 강행하려 하지만, 회사의 명운이 걸린 결정을 놓고 발행인 캐서린은 주저한다. 매체의 정체성은 특종을 했을 때가 아니라 낙종을 했을 때 비로소 발현된다. 영화는 멋지게 특종을 건져낸 이들이 아니라 낙종에 대처해 보도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주목한다. 언론 고유의 가치에 대해 누가 모르겠냐마는, 현실에서 이를 지켜내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고뇌를 현재의 언론들에 비추어 보게 된다. 이야기에 그리 힘을 주지 않아도, 주인공들을 대단한 투사나 영웅으로 만들지 않아도, 인물들의 인간적인 고뇌가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의 메시지는 관객들의 의식 속에 보다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 이야기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건 전면에 내세운 여성 발행인이다. 사실 '펜타곤 페이퍼'를 둘러싼 일련의 역사에서 캐서린 그레이엄의 존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거시사의 흐름에서 보면, 몰라도 무방한 인물일 것이다. 영화는 캐서린의 이야기를 통해 남성들의 역사에 감춰진 여성의 서사를 수면 위로 끌어낸다. 이 미시사는 영화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듦과 동시에, 관객의 감정을 고양시킨다. '더 포스트'는 진정한 발행인으로 거듭나는 캐서린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죽은 아버지와 남편의 그늘에 가려져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캐서린의 각성은 성장 서사 특유의 쾌감을 준다. 이를 통해 굳이 페미니즘을 앞에 내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보여주는 영화가 됐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익히 알고 있는 역사로 돌아온다. 워터게이트 호텔에 괴한이 침입하고 이를 경비원이 발견함으로써 닉슨 정부의 몰락을 이끈 워터게이트 사건이 시작된다. 이 사건을 특종 보도한 것이 일개 지역지에 지나지 않았던 워싱턴 포스트이고 당시 편집장이 벤 브레들리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쩌면 캐서린 그레이엄이, 그리고 벤 브레들리가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대해 신념을 지키고 언론의 사명을 다할 수 있었기에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면의 역사 역시 역사의 흐름에서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마지막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이 장면은 1976년작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오프닝 신과 이어지며, 언론의 소명을 다루는 영화들과 궤를 같이 하기도 한다. 이는 언론의 역할만큼이나, 이를 재조명하는 매체로서 영화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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