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seo Oct 11. 2018

신과함께-인과연(2018) - CG 지옥에서 길을 잃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데 묶으려다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지옥도를 현란한 CG로 소개했던 전편과 비교해 저승 풍경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 편인데, 대신 플롯이 생지옥과도 같은 상태가 됐다.

염라의 명에 의해 이야기는 처음부터 두 갈래로 갈라진다. 원귀였던 김수홍을 재판까지 세우는 여정과 성주신이 지키고 있는 집에서 수명을 넘겨 살고 있는 노인을 저승으로 데려와야 하는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그리고 각 갈래에 있는 차사들에 대한 과거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것으로 이야기는 2X2, 네 갈래가 된다. 영화는 별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교차편집을 할 수밖에 없는데, 덕분에 장면 전환마다 이야기가 덜그럭거린다. 글로 치면 시종일관 '한편'이라고 덧붙이면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꼴이 된다.

차사들이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보여주는 결말에 이르기 위해 이야기는 내내 애를 쓴다. 하지만 초반 설정에서 한 걸음도 제대로 나아가지 못한다. 결국 천 년 전 이야기가 핵심이고 현재의 이야기는 이를 해설하는 역할을 맡다 보니, 현재의 상황은 계속 답보 상태에 머문다. 계속 어색한 타이밍에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합한 계기를 통해 과거를 회상해야 부드럽게 연결이 되는데 진행되는 이야기가 없으니 적절한 타이밍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옥에서는 강림이 별 설명도 없이 계속 김수홍을 다음 재판정에 끌어다 놓는다. 김수홍은 여정 내내 투덜거리며 강림의 과거 이야기에 대해 논평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승도 마찬가지다. 철거를 최대한 미루고 아이의 미래를 만들어 주기 위해 차사들과 성주신이 고군분투하지만, 단편적인 상황들을 늘어놓을 뿐 기승전결이 없다. 여기에서는 성주신이 해원맥과 덕춘의 과거 이야기를 해설한다. (옛날이야기를 전하는 내레이터로서의 마동석은 영 어색하다)

그렇다고 차사들의 과거가 그리 매력적인 것도 아니다. 각 캐릭터를 공고히 하는 데는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지 몰라도 이야기로서는 낙제점이다. 결국 이들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연을 맺는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텐데 뻔히 예상되는 결말은 일말의 궁금증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핵심 이야기조차 저속으로 흘러간다.



부족한 이야기를 채우는 건, 업그레이드된 CG다. 하지만 기술 자랑으로 이야기의 공백을 메울 수는 없는 일이다. 아예 CG를 자랑할 목적으로 억지로 끼워 넣은 시퀀스들은 그 기술적 완성도와 관계없이 관객을 당황케 한다. 랩터, 티라노사우루스, 모사사우루스가 차례로 등장하는 공룡 신은 '쥬라기 월드'의 하이라이트 대결 신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오마주라고 밝히긴 했지만 사실 과시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마주'라는 용어가 언제부터인가 '표절은 아님'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오마주'는 엄연히 존경, 경의를 표하는 행위다. '나도 그 영화 못지않게 CG 잘 만들어요'라는 의도가 오마주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장면을 만들기 위해 공룡을 제일 무서워한다는 대사를 읊어야 했던 배우는 대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사실 '신과 함께: 인과 연'이 그럭저럭 괜찮은 평을 받았던 것은 전작의 치명적인 약점에 기인한다. 장애인 어머니를 내세운 신파가 빠지니, 속편의 이야기가 나쁘지 않아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인과 연'의 이야기 역시 제대로 보면 그리 훌륭하지 않다. 개인의 호불호 차이야 있겠지만 성주신의 반복되는 펀드 타령은 실소는커녕 정색을 하게 만든다. 유머는 상황이 만드는 것이지 스스로 웃기다고 생각하는 대사 몇 번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가만히 보면 영화는 모든 요소들을 기계적으로 끼워 맞춘다. 유머가 필요하다 싶으니 앞뒤 없이 유머를 지르고, CG를 보여주고 싶으니 억지로라도 판을 만든다.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훼손시키면서 말이다. 산만한 이야기가 진정성마저 없으니 감동도 강요받는 느낌이다. 그렇게 보면 신파극이나 이것이나 크게 다를 건 없는 셈이다.


영화는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느라 해야 될 것들을 방치한다. 이런 식이라면 '디 워'가 내세웠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관객들이 한국 영상 기술의 발전을 응원하기 위해 영화를 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신과 함께'가 얼마나 더 많은 속편을 내놓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정말 심각하게 길을 잃은 게 아닌가 싶다. 이 VR 게임 같은 세계만 계속 헤매다가는 결국 더 이상한 이야기만 양산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분명 스크린 독점만으로는 기대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목격자(2018) - 메시지만 앞세운 몰상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