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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Oct 30. 2018

밤이 온다 - 피로 만든 자극의 향연

The Night Comes for Us, 2018


말 그대로 피 튀기는 액션의 집합체. '레이드' 시리즈의 제작진이 참여해, 지금까지 보여준 일련의 영화들과 다름없는 '직진 액션'을 선보인다. 홍콩 누아르 영화에서 인물 구도와 이야기 뼈대 정도만 가져와 무자비한 신체 상해 이미지와 대량의 혈액으로 살을 붙였다.

단순하게 때리고 부수고 죽이며 전진하는 액션 영화들이야 차고 넘치지만, 가렛 에반스 사단이 만든 이 영화는 신비한 장르 경험을 제공한다. 범죄 스릴러의 외피만 둘렀을 뿐 플롯상 스릴러의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넘치는 헤모글로빈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거기에 하드고어부터 슬래셔, 스플래터까지 피가 튀고 신체가 잘려 나가는 모든 장르의 자극을 수혈받아 러닝타임 내내 아낌없이 뿌려댄다. 

인도네시아 전통 무술인 실랏에 기반한 액션도 여전하다. 격투신 내내 쉴 새 없이 관절들이 꺾이며, 갖가지 방식으로 부러지는 신체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본' 시리즈 이전 20세기의 액션 영화들이 '어떻게 때리느냐'에만 초점을 맞춰 멋진 타격 동작에만 집중했다면, 이후부터 '어떻게 맞고 쓰러지느냐'라는 반작용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밤이 온다'는 그러한 흐름에 정점을 찍는다. '밤이 온다'의 액션은 피와 살을 끼얹어 작용보다 반작용, 가해보다 피해의 이미지에 집중하게 한다. 



다만, 폭력은 달리는 데 비해 이야기는 기어간다. 단순한 이야기에 비해 러닝타임도 상당히 긴 편인데, 이는 액션 시퀀스들을 전반적으로 너무 길게 잡은 탓이다. 때문에 엄청나게 잔인하고 자극적임에도 불구, 졸음이 쏟아지는 순간들이 몇 있다. 액션을 보여주려다 이야기를 망각할 정도로 싸우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본말이 전도된 영화가 되고 말았다. 범죄 조직의 중간 보스가 왜 갑자기 여자아이 하나 구하겠다고 이 지경이 되는지, 조직은 왜 배신자를 처단하는 데 옛 친구를 동원하는지, 이런 의문은 접어두자. 죽마고우가 범죄 조직에 휘말려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된 이야기, 한 마디로 영화 속 표현 그대로 'fuckin' gangster movie'라고 이해하면 두루 편하다. 


중요한 건, '레이드'로 시작된(정확하게는 '메란타우') 이 새로운 액션 장르가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이들에게 계속 한층 더 강한 이미지를 공급해 중독시키는 방식이 당분간 주효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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