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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Nov 07. 2018

협상(2018) - 협상이 아니라 싸구려 흥정


제목은 대담하게 '협상'이지만 제대로 된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JK 필름의 '공조'가 제대로 된 공조가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협상은 단순 소재일 뿐 과정이나 기술, 혹은 협상가와 인질범 간의 심리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인질극에서 나올 법한 상황과 대사를 주워 담아 보지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내뱉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는 무슨 상황인지 설명도 없이 협상가와 관객을 제한 상황에 밀어 넣고 클리셰를 쏟아붓는다. (말이 좋아 클리셰일 뿐 이건 장르 문법으로서의 클리셰가 아니라 양심 없는 복제 수준이다) 게다가 틈만 나면 가벼워진다. 일단 범죄 스릴러는 아예 포기했고, 인질 협상을 소재로 가벼운 오락영화를 만드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첫 협상부터 어설프게 시작하는 영화는 뻔히 보이는 길을 따라간다. 몇몇 기자들은 '협상'이 대중성을 위해 논리적인 전략과 치밀한 신경전 대신 감정의 흐름을 앞세운다고 평한다.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얘기다. (너무 치밀하지 않은 전개가 영화의 장점이라는 헛소리도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감정은 반쪽짜리이기 때문이다. 민태구와 하채윤은 악랄한 악당도 프로페셔널한 협상가도 아닐뿐더러, 내내 자기 사연에만 묻혀 있는 인물들이다. 이원 촬영을 통해 실제 협상 같은 긴박감을 키우려 했다고 하는데, 두 사람의 감정에는 이렇다 할 주고받음이 없다. 각자의 트라우마와 싸우느라 상대를 보지 않는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긴 하지만, 각자의 화면에 대고 모노드라마를 하고 있는 꼴이다. 딱히 이 공간 연출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 이후 초반의 흐름은 나쁘지 않다. 설정의 구멍들은 적당한 속도감에 의해 빠르게 기억 뒤로 지나간다. 하지만, 인질범의 속셈을 감춤으로써 만든 이야기의 동력은, 같은 상황을 반복하는 성의 없는 협상 덕에 이내 꺼지고 만다. (아마추어 같은 협상가들 덕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민태구 역시 계속 1시간을 구걸하는 모자란 악당이다) 후반부는 아예 협상 테이블을 치우고 주인공들의 사연을 풀어내는 데 급급하다.

가짜 감정만 있는 영화, 논리가 실종된 영화에 어떤 평이 필요할까. JK 필름의 영화답게, '협상'은 관객과 적당히 타협하고 값을 흥정하려 한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볼만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물건을 떼다 팔듯 어디서 다 베껴올지라도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성의는 갖춰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도 성수기 스크린에 걸어 놓으면 다 본다는 생각, 그건 국내 관객을 철저히 무시하는 처사다.

어쩌면 누군가 계속 속아서 보니까 이런 잡상인의 흥정이 계속 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과감히 통화를 종료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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