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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Nov 09. 2018

공작(2018) - 시대를 뛰어넘는 개인으로서의 스파이


'공작'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다루며 현대사 이면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들춘다. 이를 통해 거대한 역사, 추악한 정치 사이에 끼인 개인으로서의 스파이를 다룬다. (거시사가 아닌 미시사, 집단이 아닌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최근 몇 년간 나온 한국 영화들의 특징인 것 같다)

박석영/흑금성(황정민 扮)과 리명운(이성민 扮)은 국가와 체제를 대변해 마주한다. 만난 것은 개인이되, 개인 대 개인의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개인은 어디까지나 개인일 뿐, 국가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인간적인 교감이 오가고 관계가 가까워지자, 이념과 체제는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이 된다. 이러한 구도는 분단 상황을 다룬 많은 영화들에서 반복되었던 것이라 새롭지는 않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의형제'나 최근 '강철비'도 비슷한 서사를 다룬다)

다만 '공작'은 탐색전과 설전이 주는 긴장감을 극대화해, 분단 상황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담아낸다. 흑금성이 신분을 세탁하고 대북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 권력층에 접근하는 과정을 담아낸 전반부에서 윤종빈 감독이 보여주는 연출력은 놀라울 정도다. 이야기가 물 흐르듯 전개되고,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 인물들의 심리가 꼼꼼하게 담긴다. 이야기는 질주하는 열차처럼 가속도가 붙어 관객을 계속 밀어붙인다. 등장인물이 총 한 번 든 적 없는데, 관객들은 마치 격렬한 액션 시퀀스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



한국 영화사에 유례없는 스파이물을 완성했지만, 정작 '공작'이 보여주려는 것은 치밀한 첩보 활동이나 심리 싸움이 아니다. '공작'이 취하는 장르 문법은 외피에 불과하다. 안에는 현대사에 대한 뜨거운 시선을 숨기고 있다. (일종의 낚시인 셈인데, 영화 초반 흑금성은 실내 낚시터에서 떡밥을 던지며 등장하기도 한다) '공작'은 우리 민족이 왜 지금껏 분단 상황을 안고 올 수밖에 없었는지, 과연 체제 간 좁힐 수 없는 간극이 그 이유였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이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한 것은 아닌지를 살핀다. 그리고 그 시선에 포착되는 것은 바로 '고뇌하는 개인'이다. 개인의 고뇌가 곧 시대의 고뇌를 대변한다.


애초에 흑금성의 공작은 북핵 유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임무는 남한의 선거를 둘러싼 정치 공작에 의해 뒷전이 되고 만다. 이전 공작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더 거대한 공작이 등장하지만, 영화는 더 이상 이를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내세우는 것은 '호연지기'다. 피아 식별을 위해 치열하게 부딪치던 흑금성과 리명운은 더 거대한 정치 공작 앞에서 서로의 신념을 인정하고 교감한다. 금성은 겉모습과 달리 내부의 표면 온도가 상당히 높은 고기온의 행성이다. '공작' 역시 차가운 첩보물의 외피 안에 실제로는 엄청나게 뜨거워 부글부글 끓는 사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광고 사업은 더 이상 비밀 핵 사찰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남북 화해로 가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기능한다. 물론 전반부를 지배하던 긴장감이 다소 이상적인 전개에 의해 희석된 부분은 아쉽다. 하지만 이념 뒤에서 대립하던 개인의 호연지기가 체제를 뛰어넘고 기존의 논리를 전복하는 순간은 분명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어쩌면 '총 한 방 쏘지 않는 첩보 영화'라는 게 그 자체로 남북의 70년 가까운 분단 역사를 은유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껏 그렇게 싸웠다. 서로 총구만 겨눈 채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 긴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너무 오래 고통받았다. 그래서 영화의 선택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첩보를 제대로 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 호연지기 있는 결말이라면 받아들일만하지 않은가. 그것이 곧 오랜 분단의 결말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라면 더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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