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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Nov 10. 2018

명당(2018) - 관상에 이르지 못한 풍수지리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만듦새를 지녔다. 초반에 명확한 선악구도를 설정하고 안정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흐름도 매끄럽고 배우들의 연기도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사실 이게 당연한 것인데 올해 한국 영화들의 수준이 워낙 참담해 준수한 것만으로 장점이 됐다. 안정감으로만 보면 추석 개봉한 네 편의 한국 영화 중 그나마 낫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며 무리한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악역의 권세를 강조하기 위함이라지만, 일개 신하가 왕을 하대하고 거침없이 능멸하는 장면은 좀 지나치다. 철저한 고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사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명당'은 드라마를 위해 무리수를 둔다. 흥선군(지성 扮)을 비롯, 김좌근(백윤식 扮), 김병기(김성균 扮) 등이 모두 실존 인물임을 감안하면, 이런 허무맹랑한 설정이 더 도드라진다. 

전개 상 가장 큰 문제는 흥선군의 야심이 드러나는 장면에 있다. 아들(훗날 고종으로 즉위하는)에게 용포를 입히고 궁의 법도를 가르치는 장면은 갑작스럽다. 초선(문채원 扮)의 죽음 이후 돌변해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를 자기가 갖겠다는 흥선군의 행보는 지성의 과장된 연기까지 겹쳐 매우 부자연스럽다. 흥선군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땅의 기운과 인간의 운명이 얽히는 가운데 자기 안의 야욕에 눈뜨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렸어야 했다. 

하지만 '명당'의 흥선군은 심적 변화 대신 삼단 변신을 꾀한다. '상갓집 개'로 불리는 파락호로 처음 등장해, 정의로운 충신이자 주인공 박재상(조승우 扮)의 동지였다가, 야심을 드러내는 왕손까지, 바쁘게 성격을 바꾼다. 하다못해 이전에 작은 단서라도 쌓아놓았어야 했는데(아들을 끔찍이 아낀다거나, 왕권 몰락을 분하게 여겨 현재의 왕 헌종에게도 불만이 있다거나, 주변으로부터 온갖 멸시를 받는 와중에 제왕적 면모와 야심을 살짝 드러낸다거나), 복선 없이 인물의 성격이 갑자기 바뀌니 관객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명당'은 관객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부족한 이야기로 보인다. 흥선군이 풍수지리가의 조언을 듣고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는 설화에 기반한 이야기는 역학과 역사를 엮을 수 있는 좋은 소재처럼 보이지만, 함정이 숨어있다. 왜냐하면 역학을 잘못된 방식으로 다룰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역학 3부작'의 첫 작품인 '관상'과 비교하면 패착이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무게감에서도 차이가 난다. 조승우는 송강호가 아니고,  지성이 백윤식과 이정재가 복합된 인물을 맡는 건 역부족이다)


'관상'의 관상학이 운명을 읽는 기술이었다면, '명당'의 풍수지리는 거의 마법과 같은 수준으로 다뤄진다. 묫자리만 바꾸면 한 가문의 흥망이 단번에 결정되니, 지관 박재상과 정만인(박충선 扮)의 대립은 마치 백마술사와 흑마술사의 대결처럼 비친다. 이미 왕을 발아래 둘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도 진짜 왕이 되려면 명당자리에 묘를 모시는 게 우선한다. 엑스칼리버도 아니고. 묫자리를 놓고 서로 칼부림을 하고 그 자체가 대단한 무기인 양 적을 협박하기도 한다. 결국 고종이 풍수 덕에 왕위에 오른 것처럼 그려지는 순간, 영화는 정말 판타지가 되어 버린다. 


'관상'의 수양은 역적의 상을 가지긴 했지만, 그 관상을 무기로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상은 운명의 굴레를 어찌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땅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명당'은 얼핏 '관상'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명당'의 인물들은 운명을 참으로 손쉽게 바꾼다. 결국 나라 잃은 수난의 역사가 흥선군이 묫자리 잘못 바꿔 시작된 것이라니, 얼마나 허탈하고 무의미한 결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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