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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Nov 23. 2018

브로크백 마운틴 - 인간의 고독을 보듬는 대자연

Brokeback Mountain, 2005


'브로크백 마운틴'을 다시 볼 때마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굳이 혼자 이 영화를 보러 와서 피식거리던 남자에 대한 기억. 그는 내 옆 한 칸 건너 객석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었다. 브로크백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고 에니스와 잭,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서서히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들이 텐트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 이르자, 남자는 피식거리기 시작했다. 주인공들이 브로크백을 떠나 4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감격스러운 키스와 포옹으로 재회할 때도, 서로의 자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갈구하며 때로는 여느 연인들처럼 질투하며 다툴 때도, 관객석의 그 남자는 피식거렸다. 지난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고 동성애에 대한 세간의 인식도 꽤 바뀌었지만, 동성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때마다 난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함께 떠올리곤 한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저 남자는 이들의 사랑이 우습나? 자기가 하는 사랑은 뭐 그리 잘났다고.' 그 사람의 이성애가 영화 주인공들의 동성애보다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고 괜한 저주도 했었던 것 같다. 누구도 다른 이의 사랑을 비웃을 자격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으니까. 돌이켜보니 그 남자는 그냥 멋쩍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들은 건 결코 멋쩍은 웃음이 아니었지만, 그 사람의 표현법이 독특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웃음이든 멋쩍음이든 그가 외로워 보였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끝없는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주인공들도 외로운 영혼들이다. 그들은 우연히 서로를 발견한다. 브로크백은 둘의 만남을 묵묵히 지켜본다.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브로크백 마운틴은 언제나 거대하고 인자하다.


그러나 이들이 이곳을 떠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일상의 공간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다. 지루한 일상들에서는 미세한 균열이 포착된다. 에니스는 늘 밥벌이를 걱정해야 되고, 잭은 에니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들은 당연한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로데오가 끝난 후의 바에서도, 아내와의 일상적인 잠자리 중에도, 외로움을 슬며시 고개를 든다. 카메라는 일상을 사는 인물들에게서 미세한 공백을 잡아낸다.



그들의 외로움은 오직 재회를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브로크백은 에니스와 잭에게 있어 재회의 공간이자 낙원이다. 그들에게 세상이 혐오의 시선으로 가득 차 끝도 없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공간이라면, 브로크백은 모든 것을 이해받는 공간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들이 브로크백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롱쇼트들은 아름다운 풍광 속에 한없이 작은 두 남자를 보여준다. 특히 양 떼를 모는 장면에서 그들은 양들과 뒤섞여 그들과 다를 바 없는 공간을 차지하는 한없이 작은 존재로 나온다. 신의 뜻에 순순히 응하는 어린 양처럼, 브로크백에서라면 외로움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두 남자는 모든 것을 초월해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연 안에서 통합된다. 이들의 고독은 브로크백으로 수렴된다.



하지만 어린 양이 그러하듯 자연과 신의 섭리 앞에서 인간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고독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치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내도, 자식도, 나의 근원적인 고독을 채워줄 수 없다.


더욱 무서운 것은 타인의 시선이다. 이들의 사랑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고, 이 운명에 로데오 선수처럼 거칠게 반항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불구가 되기 전에 로데오를 그만둘 수밖에 없듯, 타인의 시선 앞에 둘은 무력하기만 하다. 그것이 풋볼을 봐야 남자답게 큰다는 고정된 성 정체성에 대한 강압으로 나타나든, 성기 잘린 시체에 대한 에니스의 트라우마로 나타나든, 밖에서나 안에서나 타인의 논리는 강력하게 작동한다. 이 연약한 사랑은 브로크백이 아닌 공간에서는 잠시 숨 쉴 수조차 없게 된다.



에니스는 잭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장면을 상상한다. 타이어에 펑크가 나 트럭 밖으로 튕겨나가죽었다는 이야기와 달리, 에니스의 머릿속에는 그를 괴롭히는 과거 사건처럼 타인에 의해 살해되는 잭의 모습이 떠오른다.


양쪽 타이어의 압력이 맞아야 굴러갈 수 있는 트럭은 남녀 사이의 이성애라는 균형으로 굴러가는,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사회 질서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 균형이 깨지면 어쩔 수 없이 운전자는 튕겨나갈 수밖에 없다. 결국 잭의 운명은 그렇게 결정된 것이다. 에니스의 입장에서 잭은 살해당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에니스를 시종일관 괴롭히던 트라우마의 형태로 나타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 이슈를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는다. 이성애, 동성애와 관계없이 잭과 에니스는 단순히 외로운 존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를 갈구했던 것이다. 영화는 무거운 이슈를 직접 이야기하는 대신 그보다 더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 인간 근원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없이 절제된 대사만을 던지는 인물들은 리액션조차 아낀다. 어떤 물음과 말에 대해 그저 씩 웃을 뿐이다. 비로소 인물들은 대사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생명력을 가진 존재이자 한없이 외로운 존재로 재탄생한다. 안으로 목소리를 되씹는 듯한 히스 레저의 발성은 강한 남성 속에 감추어진 연약한 본성을 잘 보여준다. 카우보이는 전형적인 마초 남성이 아니라 외로운 인간의 전형으로 재인식된다. 이를 통해 영화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과 인간 본연의 고독을 동시에 그린다.



긴 세월 사랑했던 두 남자. 하지만 거대한 굴레 아래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던 두 남자.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 홀로 남은 에니스는 혼잣말로 잭에게 무언가를 맹세한다. 그것은 사랑의 맹세라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세상의 굴레 아래 진저리 나게 외롭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의 친구, 연인에게 무엇을 맹세할 수 있을까. 그것으로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까. 적어도 홀로 영화를 보러 와서 남의 외로움을 비웃은 남자는 에니스나 잭과 달리 어느 곳에서도 위로받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He was a Friend of Mine (Bob Dylan - Performed by Willie Nelson)

He was a friend of mine

He was a friend of mine

Every time I think about him now

Lord I just can't keep from cryin'

'Cause he was a friend of mine

He died on the road

He died on the road

He never had enough money

To pay his room or board

And he was a friend of mine

I stole away and cried

I stole away and cried

'Cause I never had too much money

And I never been quite satisfied

And he was a friend of mine

He never done no wrong

He never done no wrong

A thousand miles from home

And he never harmed no one

And he was a friend of mine

He was a friend of mine

He was a friend of mine

Every time I hear his name

Lord I just can't keep from cryin'

'Cause he was a friend of mine.


The Maker Makes (Rufus Wainwright - performed by Rufus Wainwright)

One more chain I break

to get me closer to you

One more chain does the maker make

to keep me from bustin' through

One more notch I scratch

to keep me thinkin' of you

One more notch does the maker make

upon my face so blue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One more smile I fake,

'n try my best to be glad

One more smile does the maker make,

because he knows I'm sad

Oh Lord, how I know,

Oh Lord, how I see,

that only can the maker make a happy man of me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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