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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사원 Feb 26. 2023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

4월 첫째 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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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해제가 되고 오랜만에 문래동에 갔다

눈부신 햇살, 가벼워진 공기

일상에 백금빛이 물들기 시작한다


쫓기듯 달력을 넘기다 보면

봄은 어느 순간 성큼 다가와있다

훈훈한 기운이 아직은 낯설다


조금씩 꿈틀거리는 거리와 다르게

내면은 아직 움츠린 자세가 익숙하다


크고 작은 변곡을 겪다 보면

시작보다 끝에, 새로움보다 편안함에

초점을 맞추는 버릇이 생긴다


덜 아프고 덜 흔들리는 방향으로

몸과 생각이 기운다


-

어느새 '시간' '세월' 같은 단어나

그것을 상징하는 물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끝이 지하를 향하는 컨베이어벨트가 떠오른다


새로운 것을 낡게 만들고

낡은 것은 끝내 사라지게 만드는 것


살아가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끝을 생각하면 사랑하는 것도 두려워진다


생은 누구도 각색하지 못하는

지긋지긋한 클리셰의 반복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추억도

러닝타임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

나도 모르던 상처가 갑자기 쓰라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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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살아가는 건 온전한 자기 의지다


누리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삶은 종종 견뎌내야 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내 덩치는 그대로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짊어져야 할까

부담감에 짓눌릴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애초에 이 모든 것이

대가 없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려 한다


시간은 짐이 아닌 선물로 주어졌으며

난 그것에 최선의 노력과 행복으로 보답하려 한다


준 것보다 받은 것을 떠올릴 때

기존의 것들을 내려놓고

새롭게 짊어지는 마음의 무게는


대가 없이 주어진 것에도

자발적으로 값을 치르게 한다

속죄가 아닌 기쁨으로

나의 시간을 감당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감사함은

무게감을 충만함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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