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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Jun 17. 2020

자본주의 심리


"야, 나 로또 걸렸어. 술 한잔 쏜다. 뭐 먹고 싶냐"

"뻥치고 있네~ “

장난으로 감정이 틀어졌던 지인과 다시 장난의 언어로 새롭게 링크가 연결됐다. 과거의 오해는 더 이상 묻지 않는 게 남자들의 불문율인지라, 자연스레 안부를 묻던 중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IT 애플리케이션 부분 스타트업으로 선정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잘됐네, 축하해.” 

“그래 고맙다. 별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선정돼서 어안이 벙벙하네” 

“이제부터 잘 준비하면 돼지”


이전에 지원 소식과 아이디어를 듣긴 했었지만, 실제로 선정되었다고 하니 내심 신기하고 대단했다. 내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즐겁고 설레는 감정이 느껴진다. IT와 애플리케이션 쪽으로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예전 그의 아이디어가 신선하거나 대단하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되뇌어보니 괜찮은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내 생각이 간사한 것인지 아니면 결과에 따라 마음이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슬그머니 부러운 감정이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시기와 질투는 아니지만, 그의 아이디어와 행동력은 부러운 것이 분명했다. 

“드디어 조 대표가 됐네. 잘되길 응원할게. 도울 게 있으면 연락하고.

멋지게 성공해서 자주 보자고. 허허. ” 

응원의 메시지와 나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다는 긍정적 경쟁 심리가 발동한다. 어른들의 자본주의는 긍정적 경쟁과 발전을 서로에게 전달한다. 마음의 흐뭇하다. 한편으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무게감도 느껴진다. 어쨌든 긍정적인 신호임이 틀림없다. 


주말 동안 처갓집에 처갓집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처제의 아들, 딸이 합세하여 아이 3명의 놀이 천국이 되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온 집안이 들썩인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이라 자기들끼리 잘 놀다가도 금방 싸우고 화해를 반복한다. 아이는 3명인데 한 가지 장난감을 선점하고 싶어서 싸우기 시작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첫째는 또박또박 말하며 자기 것이라는 논리를 앞세웠고, 말이 부족한 두 꼬마 놈은 울고 불고 감정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기에 곤욕스럽다. 안타깝게도 이럴 땐 어린놈이 항상 이기곤 한다. 논리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애기들 이니까 말이다. 


가장 효율적으로 갈등을 중재하는 법은 동일한 과자, 사탕, 장난감 모든 것을 똑같이 나눠주는 것이다. 나이, 성별 상관할 것 없이 동일한 것을 동일한 양으로 동일하게 나눠주면 해결된다. 나아가 색깔, 크기, 모양 조차 같아야 불만이 없어진다. 쌍둥이를 가진 지인이 있는데 아이들 옷이며, 장난감을 항상 똑같은 것으로 구매한다. 그렇지 않아도 쌍둥이라 얼굴이 똑같은데,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면 옷까지 똑같아서 정말 Ctrl+C, Ctrl +V 가 따로 없다. 예전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이들을 보니 쌍둥이 부모의 행동은 ‘컨셉'이 아닌 ‘전략’인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의 세계에는 불평등이 없다. 자본주의 논리가 없는 것 같다. 똑같이 배분해야 하고, 나누어야 한다. 다 같이 없는 것은 이해되지만, 한 명만 가지게 되는 불공평은 절대 납득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세계는 적어도 사회주의와 비슷하다. 

“저것은 원래 언니 꺼야” 하는 사유 재산에 대한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아빠가 나중에 사줄게" 하는 신용의 약속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 자신의 만족을 위해 때를 쓰는 아이들이다. 내가 없는 것을 상대방이 가진 것이 더 불만이 크다. 잠시 시선을 돌려 달콤한 간식을 동등하게 배분하면 이전 장난감 독점 싸움은 금방 잊어버린다. 이들의 평화란 참으로 간단한 논리로 작동하는 것 같다.


아이들의 세계가 평화로운 것인지 어른들의 이유 있는 질투와 부러움을 통한 경쟁이 좋은 것인지 사실 애매모호할 때가 많다. 가끔 재산 분쟁으로 피 섞인 가족끼리도 등을 돌리지 않던가. 어릴 적에는 평등하게 배분만 하면 됐었지만 어른이 되면 기여도, 지분, 감정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어른들의 세계는 아이들의 세계보다 확실히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평등보다 경쟁을 택했다. 그것이 더 공평하다고 느끼니까 말이다. 


아마 지금 싸우고 있는 아이들도 성장하며 곧 경쟁을 시작할 것이다. 한편으론  평등을 위해 싸우는 지금이 행복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경쟁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동일하게 느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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