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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Jun 15. 2020

코로나 버킷리스트

코로나가 끝날 것 같지 않은 요즘이다. 잠잠해질 것 같았던 코로나는 수도권 클럽에서 시작해 인천, 경기 부천으로 확산되며 여전히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인간은 망각이라는 축복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좋게 활용하기도 하고 나쁘게 활용하기도 한다. 좋지 않은 기억을 망각하고 이내 즐거운 삶으로 귀환하지만, 과거의 어려움에 대한 망각은 새로운 위험을 또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인간의 망각에 대해 주의를 주는 것일까.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간헐적으로 계속해서 감염자가 나오고 있다. 인간의 망각을 일깨워주기 위해 쓸데없이 바이러스가 열일하고 있는 요즘이다. 


다행히 근래에는 야외 활동도 많아졌고, 많은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그래도 단체 집합이나, 여행, 공용 시설 사용에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기본적인 활동은 허락하지만, 궁극적인 자유에 제한이 있다. 문득 군생활이 생각났다. 군 복무 시절 근무복 상의 포켓에 항상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꺼내어 기록하곤 했는데 내용은 사사로운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다음 외박 때 먹어야 할 것 : 

스모키 베이컨칩. 트윅스. 교촌 치킨. 동래역 오도독뼈. 부산대 앞 할머니 고갈비. 광안리 다리집 떡볶이. 

*휴가 때 가보고 싶은 곳 : 

을숙도. 진주 남강. 삼천포. 거제 바람의 언덕. 

*전역 후 살 것 :

나이키 에어맥스 95, 카키색 부츠컷 바지, 폴로 피케 셔츠

*전역 후 할 것 :

소개팅. 제주도 여행. 술집 아르바이트. 자격증 따기. 


되돌아보면 볼품없고 유치한 리스트인지 모르지만, 당시 그것들은 휴가, 외박, 전역을 위한 소중한 버킷리스트였다. 하루하루를 이 리스트를 보며 힘을 냈고, 휴가를 위해 몇 달간 리스트 작성하는 재미로 군생활을 했다. 막상 전역을 하고 완벽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는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한두 번은 재미있고, 즐거웠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모든 것은 이내 익숙해졌고, 지루해졌다. 몇 달간 이것을 위해 수첩에 기록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는데 막상 결승점에 도달하니 허무한 기분마저 들었다. 리스트를 지워 나가기 위해 친구들과 매일 같이 만나 수다 떨며 마셨던 술잔 뒤로 과거의 기억은 망각되고 있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도 코로나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왜 다시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닌 걸까. 어쩌면 난 미래에 지금의 순간을 망각하고 또 새로운 위험과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인간은 변화의 동물임이 틀림없다. 매번 내 곁에는 소중한 시간들이 존재한다. 여전히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곁에 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행복을 주는지 말이다. 지금을 느껴야 한다. 지금 순간을 소중히 해야겠다.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바로 지금. 괴로운 시간도 소중히 보낼 수 있음에. 그리고  성숙을 위한 응축의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지금부터 가슴속 작은 수첩을  꺼내어 적어야겠다. 먹고 싶은 것도 적고. 가고 싶은 곳도 적고 말이다. 

가족들과 함께 모두 모여 계곡에서 맛있는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연말 유명 뮤지션의 콘서트를 가서 소리치며 음악을 듣고 싶다. 

와이프와 발리에 가서 나시고랭을 먹고 싶다. 

지금도 맞지만 그때도 맞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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