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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Jun 14. 2020

2년의 마디

2년 마다 이사를 가자규


시인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휘어진 것이다. 부러진 것이 아니라"


부러지지 않는 방법을 배운 것 중 두 가지가 기억에 남아있다. 하나는 자식들에게 나무 가지를 가져오게 한 다음 하나씩은 잘 부러지지만, 여러 개를 합쳐 한번에 부러뜨리려 할 때 쉽게 꺾이지 않는 교훈을 준 이야기다. 형제간의 우애, 협동이 부러지지 않는 방법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대나무에 관한 것인데 길게 뻗으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이유는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매년 마디를 만들어 성장하는 대나무는 마디들이 힘이 되어 견고하게 성장한다.


남성에겐 2년이란 기간은 의미가 깊다. 2년을 인생의 마디로 삼는 경향이 있다. 이유인 즉 군 복무와 관련이 있는데, 평균 24개월을 군 복무로 보내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은 많이 줄었다) 많은 남성들이 군 복무 전과 후로 인생이 극명하게 비교되기 때문에 2년은 감회가 새롭다. 2년 전 보다 성숙한 모습이라던지, 2년 동안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전세 임차기간도 2년이다. 2년 전을 되돌아보면 아이는 걷지도 못하고 내 품에 안겨 있었는데 어느새 뛰어다닐 만큼 성장했다. 요즘엔 소리 내기 않고 조심히 걸으라고 재촉하는 모습이 더 익숙하다.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고, 얼마나 바뀌었을까. 고작 한 마디를 되돌아보았을 뿐인데 삶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지인 하나 없는 동네로 오면서 느꼈던 낯선 감정과 이제는 꽤 익숙해진 지리와 가게들. 그리고 또 떠날 다음 동네에 대한 설렘. 외형적인 변화만큼이나 기대되는 나의 성장과 가족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또 한마디를 만들었구나.'


가족들을 품에 안고 두 번째 이사를 마쳤다. 입주 날짜가 맞지 않아 2주간 처갓집에서 출퇴근을 하며 보내야 하는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됐다. 정체하고 있어 보이지만 매번 되돌아보면 계단처럼 성장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2년의 마디는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거라 믿는다. 믿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더 마디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밀도를 높이는데 욕심을 낸다. 득인지 실인지는 겪어봐야 알 것 같다.


대나무는 마디가 있어서 부러지지 않고 길게 자란다고 했는데, 사실 과학적으로는 더 큰 이유가 따로 있다. 바로 텅 빈 내부 공간인데, 이 원리는 쇠파이프의 내부가 꽉 차지 않고 비어 있는 원리와 같다. 가끔은 속을 비워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견고해지기 위해 밀도만 높이기보다는 득과 실을 따져 욕심과 허를 비워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앞으로 있을 고난과 역풍에 부러지지 않기 위해서. 유연하게 휘어지며 인생을 유유히 즐기려면 마디도 만들어야 하고, 속도 비워 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인생의 마디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과거 2년 보다, 2년 후 모습이 기대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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