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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Jun 12. 2020

낙관과 비관 사이

비관력의 힘

6여년전 어머니가 상견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눈물을 펑펑 쏟으셨다.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의 눈물 앞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신 이유는 이렇다. 결혼식을 서울에서 하기로 정하고, 부산이 고향인 부모님은 오시는 하객들을 위해 차량 대절과 음식, 음료 등 준비에 걱정이 많으셨다. 더워지는 날씨 5월에 준비한 음식이 상하지 않을지. 왕복 8시간 차량 이동 중 어떤 음식이 하객들에게 소화가 잘될지. 음식 준비와 배송은 정확한 시간에 배송이 될지. 모든 상황에 대비를 하셨고, 비관적 상황에 대해 걱정하셨다. 어머니의 비관적인 반응에 아버지는 철저히 무관심이셨고 ‘그런 것까지 신경 쓰느냐’고 무안을 주셨다. 어머니는 자신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속상하셨는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셨다.


어머니는 비관적이었다. 다른 말로 준비성이 철저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도 항상 어머니 혼자 준비하고 철저하게 신경 쓰셨다. '비관'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잘 안될지 모른다는 걱정의 비관을 넘어, 방법론적으로 구체적인 준비와 대책을 세워두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어머니의 DNA를 조금 더 물려받은 경향이 있는 나도 '비관적'이다. 나의 '비관력'에 대해 누군가는 오버스럽다고 하는 이도 있고, 준비성이 철저한 것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신입사원 시절 워크샵 때 일이다. 대형 콘도를 대여해 다른 부서 사람들과 섞여 랜덤으로 방 배치를 받았다. 팀장은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다른 부서 사람들과 같은 방을 쓰는 게 불편했는지 내가 속한 방에 머물러도 되겠냐며 방 멤버들의 설득을 원했다. 결국 팀장은 우리 방으로 오게 됐지만 구성원보다 인원이 추가된 방의 추가 비치품은 1개씩 부족했고, 나의 비품은 모두 팀장의 차지였다.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을까. 유유히 나의 가방에서 미리 준비된 수건과 비품, 옷걸이까지 꺼냈다. 1박 2일 워크샵 가는데 드라이기, 두루마리 휴지까지 모두 챙겨갔으니 위 사례는 나의 비관력의 힘을 증명한 것 임에 분명하다.


가끔은 비관력이 너무 작동하여 힘들 때도 있다. 긴장하면 소화불량에 걸리는 예민한 성격을 대비해서 모든 가방의 수납포켓, 내 방 서랍, 회사 서랍 등 모든 곳에 소화제를 구비하고 있다. 소화가 안 되는 비상시에 먹기 위함인데 소화 불량임에도 불구하고 더 강도가 심한 소화불량을 대비하여 먹지 않고 견뎌 보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보관된 소화제는 유통기한이 지나 똥이 될 때가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있다니. 지나친 비관력의 문제점이다.


반면 와이프는 낙관적이다. 결혼 전 ‘점’을 보러 가서 점쟁이가 남편이 잘 된다는 소리를 해 줬단다. 기분이 오묘하다. 한편으론 기분이 좋은데, 뭔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열심히 일궈놓아도 나의 노력이 원인이기보다는 '점쟁이의 말이 역시 맞는구나. 역시 나는 복이 많은 여자야' 하고 낙관해 버리는 일이 일어날까 봐서이다. 잘되면 점쟁이 탓이고, ‘안되면  말고' 식이다.

'제길. 이거 뭐 열심히 해도 결국 점쟁이 탓이겠구먼'

그렇다고 대충 살기엔 나의 비관력이 가만히 있질 않는다. 내가 쓰러지면 우리 가족이 힘들어질 것이고, 부인은 점쟁이를 탓하며 돌팔이라고 욕을 하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결국은 내가 이겨 낼 수밖에 없다.

'난 잘 돼야 해. 이겨내고 말 꺼야.' 다시 다짐하고 삶을 이어가야 한다.


사람들은 낙관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석하지만, 단점도 분명 있다. 특히 막연한 낙관이 그러하다. '난 차 사고는 절대로 나지 않을 거니깐 안전벨트를 안 매도 되겠지?' 하는 것이 동일한 맥락 같다. 가끔 와이프에게 대책 없는 막연한 긍정이 보일 때면 참으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어쩌면 나와 반대 성향인 와이프의 '낙관력'의 매력에 빠져 결혼하였으니 아주 절묘한 조합이지 않을까 스스로 위로해본다.


낙관과 비관 사이. 긍정과 부정 사이. 냉정과 열정사이. 옳고 그름의 사이에서 항상 혼란이 생긴다. 흑백논리로 하나가 옳고 다른 하나는 틀리다 라고 결론을 빨리 내고 싶어 하는 나의 본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비관하는 힘>의 모리 히로시는 책 마지막 페이지에 멋지게 메시지를 나에게 던진다.  


내가 에세이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나는 이렇다" 하는 내용이다. "당신도 이렇게 하라"라고 주장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거다" 하는 구체적인 정보도 쓴 적이 없다.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조건도 상황도 다르므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잘 되든 못되든 내게는 영향이 없다. 손해를 보는 것도 이득을 보는 것도 내가 아니라 당신이다.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뭔가를 조사해 데이터를 근거로 한 논술을 하는 것부터 이 책처럼 단순히 개인의 논리를 말하는 것까지 책의 내용은 상당히 폭넓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 통계나 조사를 근거로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내 용이도 장신에게 맞을지 어떨지 알 수없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도 당신이다.


크. 멋지다. 그래. 언젠가 내가 쓰고 싶던 문장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글쓰기도, 삶도 옳든 그르든 그냥 내 맘대로 해야 될 마음속 근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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