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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Jun 29. 2020

나를 찾아서

랩퍼 뱃사공에게 배우는 인생 한수

2010년 초반. 내 '청춘'이 단어처럼 푸른 봄이었을 당시 대세는 밴드 음악이었다. 특히 인디 밴드들의 전성기였다. TV 쇼 타이틀만 보더라도 '밴드의 시대','탑밴드' 같은 프로그램에 익숙했고 지산, 부산, 인천 등 굵직한 장소에서 매년 록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더운 땡볓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어른들은 반문했지만 개미 때 같은 젋은이들은 10만 원이 넘는 입장료를 내고 하루 종일 공연장에 바글바글했다. 나 또한 주말에 한강 공원, 올림픽 공원 잔디밭 위에서 밴드 공연을 보며, 맥주 마시고, 점프하고, 그루브 타며 음악에 젖은 것인지 허세에 젖은 것인지 모를 때의 기억이 있다. 당시엔 히피스러움이 '스웨그'였다. 신경 쓰지 않았지만 촌스럽지 않은 빈티지스러움. 정박보다는 엇박. 촌스러운 멜로디지만, 그루브 한 리듬감이 대세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그게 대세였다. 뭔지 모르겠겠는데 그냥 괜찮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그동안 게으름 부리지 않고 착실히 늙어 '반늙은이'가 된 지금은 대세 음악은 '힙합'이다. '쇼미더머니'로 대중화에 불을 지핀 힙합이 시즌 9를 제작한다고 하니 힙합의 흐름이 꽤나 길게 가는 것을 증명한다. 패션도, 라이프 스타일도, 음악에도 모두 트렌드가 있는 법인데 한 장르가 이렇게 오래가는 게 신기하다. 아마 질리지 않게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일 거다.


나 역시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 반 늙은이지만, 힙합도 좋다. 좋아하는 힙합 뮤지션이 있는데 별명이 '거지 래퍼'로  불리는 <뱃사공>이다. Simon D, Gray, Zico, Zion-T. 무슨 전자 제품 같은 영어 랩 네임들 사이에서 뱃사공이라니,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풍류를 아는 아날로그 래퍼랄까? 그가 사랑하는 의상은 '빈티지'다. 흡사 거지 같다. 주변 래퍼 친구들이 포르쉐를 몰고 다닐 때 마티즈 액셀을 때려 밟는다. 차량 스피커가 고장 나서 이어폰을 꽂고 달리는 아날로그 감성은 그의 매력 중 백미다. 음악을 하고 싶어서 알바를 뛴다. 안 해본 알바가 없단다.

"동정하지 마세요. 허허.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음악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알바는 돈 벌려고 하는 거니까요. 전 괜찮아요. 허허. "

출처 : 엠비C

그는 자기 음악을 한다. 내가 좋아했던 옛 그루브 한 밴드 리듬에 자신의 랩을 얹는다. 또 빈티지한 락 밴드에 자기 랩을 얹는다. 트렌드고 나발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 유명하냐고? 2019년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 & 힙합상을 받았다. 곡명도 '탕아'다. _[명사] 방탕한 사나이. 스타들의 등용문 TV쇼 '라디오 스타'에도 나왔다. 방송에 나와도 자본주의의 상징 메이크업과 헤어도 하지 않는다. 그냥 삶이 '그' 자체다.

"대중을 의식하면. 억지러 껴맞추게 된다."

그는 돈 벌려고 음악 하는 게 아니란다. 자기가 원하는 음악과 삶이 있단다. 상따 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TV에 왜 나왔냐고 물으면, 나오기 싫었지만 부모님 잔소리를 좀 덜 듣기 위해서란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I LOVE ME"

출처 : 딩go


그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이유는 나의 결핍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이 보는 나를 신경 쓰고, 사회가 보는 시선에 나를 끼워 맞추던 모습에 대한 '결핍' 말이다. 갑자기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책으로 돌아와서 미안하지만, <당신의 생각은 사양합니다>에서 작가는 냉소적이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일단 인정받고 싶은 나를 인정하자"

'아 그래 맞아. 난 인정받고 싶었어. 크크큭'

오죽하면 헤겔이 인간의 삶은 인정 투쟁이라고 말했을까. 인정받고 싶은 건 기본적인 욕구다. 인간은 결핍된 것에 집착한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가장 클 수밖에 앖는 것처럼 우리의 인정 욕구도 그렇단다. 나 보다 훨씬 똑똑하고 많이 배운 '매슬로'도 인간의 욕구 5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지 않았나. 뭐 인정 욕구는 그냥 받아들이자.


나의 비리와 어두움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정직하게 구는 것보다 자신에게 솔직하기가 더 어려운 일 같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봤자 나는 다 알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속임수를 쓰지 않으면서도 어떻게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피하려면 고도의 자기 최면 혹은 자기기만을 해야 한다. <당신의 생각은 사양합니다>


책 덕분에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좀 된 것 같다.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나를 표현하고 스스로를 찾아가는 단계다.


나를 표현하려면 표현할 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나의 느낌, 감정, 생각, 신념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또 이런 것들을 표현하려면 나는 지금 어떤 느낌을 갖고 잇고, 어떤 감정이 생겨나며, 무엇이 좋고 싫은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바로 이와 같은 것들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 '자기감'이다. <당신의 생각은 사양합니다>


자기감을 키우기 위해 나는 글쓰기를 택했다. 매일 쓰려고 노력한다. 가끔 빼먹기도 하지만. (흐흐) 자기감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오로지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이다. 글을 쓸 때만큼은 자신을 사랑하려 한다. 부업으로 상품을 팔고 있는데, 이때는 철저히 고객의 '니즈'와 '원츠'를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나'란 없다. 그래도 괜찮다. 뱃사공 말대로 '돈 벌기 위해 하는 거니까'. 고객의 불만과 악플은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공격하는 거니까 말이다.


글을 쓸 때만큼은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 혹시 책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물건을 팔려고 하지 말고. 나를 팔 거다. 나를 팔려면, 나에게 집중해야지. 나만 쓸 수 있는 글 말이다. 좋아하면 좋은 거고,  싫어도 어쩔 수 없고.

뱃사공도 <탕아>에서 랩 한다.

"존나 멋! 존나 멋! 그건 누구겠어 뱃!(사공) "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하는데, 밑도 끝도 없이 이런 글 적을 수 있는 나도 존나 멋진 것 같다.


그래도 하나의 욕구가 있는데 말이다.

적어도 인정받고 싶다,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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