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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Jun 26. 2020

'간절함'은 소중해


'나 혼자 산다'에 출연 중인 만화가 '기안 84'는 전투 경찰 출신이다. 사람들은 '패션왕'을 더 잘 알고 있지만 전투 경찰 생활을 담은 <노병가>라는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다. 우연스럽게도 나와 같은 84년생, 그리고 군생활도 의무경찰로 똑같이 전역했다.


노병가는 전투경찰, 의무경찰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육군, 해군 같은 일반 군대보다 '땡보'( 편하다는 뜻 )로 취급받기에 전의경 출신 전역자들이 만화를 보면서 위안을 얻고, 작가를 응원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내가 그러하기에 일반화시켰다. 국방의 의무는 어렵든, 쉽든 어떤 보직이든 모두 신성하다. 군필자들은 자신들의 군생활이 가장 힘들었다고 술자리에서 각자 주장하지만, '군생활 고통 월드컵'에서 우승 상금을 주는 것이 아니니 모두 무의미하다.


군생활은 나에게도 힘들었다. 꼴에 곱게 자란 자식이었기에 단체 생활과 고된 훈련, 상급자로 부터의 갈굼과 구타로 물든 군생활은  20살 평생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언제 그런 경험을 해보았겠는가. 훈련소 생활 후 자대 배치를 받았다. 내무반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긴장 속 실수가 터졌고 실수는 또 다른 실수를 낳았다. 내무반 선임들은 날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 매일 밤 점호 후 선임들로부터 갈굼과 구타를 당했다. 병원 갈 만큼은 아니지만, 다음날 욱신거릴 만큼은 맞았다.


내무 생활이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점호를 하는 매일 밤이 무서웠고, 다음날 아침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 내무 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

다 큰 성인이었지만, 부모 앞에선 한없이 작은 아들이었다. 유선으로 어머니에게 군생활의 힘듬을 토로했고,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수소문 끝에 관할 경찰서장의 지인을 알게 됐다. 지인의 정체가 매우 오묘하다. 운전 수행 기사분이셨는데, 자신이 모시는 임원분이 경찰서장이 사는 아파트에 우연스레 살아서 아침 출근길마다 주차장에서 경찰서장을 봤다는 것이다. 지인이라고 하기에도 힘든, 남남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처지가 딱해 그분에게 간곡히 요청을 구했다. 운전기사분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찰서장에게 한마디 요청하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고 주저하셨단다. 고위 공무원에게 말을 건네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떨렸을까. 혹시나 이런 것이 부정 청탁이 될 수 있으니 얼마나 고심하셨겠는가. 결국 용기가 없어 손편지를 써서 아침 출근길에 경찰서장께 전달했다고 한다.

'우리 먼 조카 놈이 군대를 갔는데, 관할서에서 복무 중이라고 합니다. 염치없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내용이었지 않았을까.  


드라마틱하게 편지를 받아 든 경찰서장이 우리 중대로 전화를 했다.

"거기 OOO대원이라고 있지요? 잘 부탁합니다. "

전화 한 통에 중대장은 조용히 나를 불러 운전병으로 발탁했다. 중대에 소문이 퍼졌다. 나의 백은 경찰서장이라고. 사실 그런 백을 둔적이 없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대장을 비롯한 선임들은 나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다. 얕디 얕은 부모님 지인의 끈 덕분에 군생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감사드리는 마음이 아직도 유효하다.


전역 후 그분께 감사함을 전달드렸다. 그분이 말했다. 자신은 일개 운전기사로 알지도 못하는 고위 공무원에게 말을 걸고, 부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겁났던지 기억에 선명하시단다. 자신도 며칠간 고민을 하고, 눈 앞에서 주저했다고 한다. 지인의 자재분이 힘들다고 들었고, 자신의 군생활의 간절함이 생각나더란다. 간절함이 자신을 움직이게 했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아 편지로 마음을 전했다고 했다. 군생활의 간절함을 잊지 말라는 말씀도 선물 받았다.


군대의 간절함이 생각난다. 점호 시간이 두려워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소변기와 대변기를 닦았다. 더러움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맞는 것보다 더러움이 나았다.  날 싫어하던 선임들만이라도 피하고 싶었다. 너무도 간절했다. 비록 외부 에너지로부터 발생한 간절함이었지만 말이다. 당시 간절함으로 전역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도 '간절함'은 있지만, 깊이가 틀리다. 경찰서장에게 요청 구한 지인이처럼 나도 행동할 수 있을까. 회사의 회장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오픈 마켓 CEO를 찾아가 제안을 하는 용기와 간절함이 있는가.


매일 목을 축일만큼의 작은 그릇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가. 작디작은 그릇의 물을 계속해서 비워내 갈증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간절함'이 아닐까.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간절함보다, 철저히 내가 만들어낼 '간절함'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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