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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Jul 18. 2020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지하철이 밀려서요.

이럴바엔 여유 있는 지각자가 되겠어요


10년째 근속 중이다. 10년 동안 지각 3번을 했다. 이 정도면 독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성실하다고 해야 하나. 개근상 주는 세상은 아니지만 적어도 근퇴관리에서 만큼은 철저히 한 자기 관리에 박수를 보낸다. 최근 육아로 힘들어하던 와이프를 위해 모든 혜택을 몰빵(?)해서 거주지를 처가 근처로 옮겼다. 덕분에 길어진 출퇴근 시간은 내 10년의 지각 관리 커리어에 흠집을 내기 위해 도전을 해온다. 편도 1시간 10분. 무슨 문 제람. 2시간 일찍 나가면 되지 뭐.


2호선 순환선은 출퇴근길의 가장 난이도 있는 노선이다. 눈으로 보기에 믿기 힘든 장면도 종종 발견한다. 지하철 3~4대가 연속으로 가깝게 달리고 있는 장면이다. 춘천 레일 바이크도 이렇게까지 안전거리를 지키지 안 않을 텐데. 지하철 현황판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서울 2호선의 악명 높은 명성답다. 예전에는 '지하철이 밀려서 지각했습니다'라는 말이 썰렁한 농담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2호선은 지하철이 밀린다.


거짓말이 아니라 지하철도 진짜 밀린다


출퇴근 시간에 이용객이 많다. 하나 걸러 또 환승역이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나갔다가 썰물처럼 밀려들어온다. 가끔 사람의 급류에 휩쓸려 비명을 지른다. 바쁜 출근길 누군가 내 옆을 치고 뛰어갔다. 부딪히며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다행히 액정은 무사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사람은 허겁지겁 지하철에 몸을 싣었다. 두 뼘 정도의 좁은 공간에 억지로 자신의 몸을 구겨 넣는다. 급하긴 급한가 보다. 핸드폰을 확인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유유히 플랫폼에 도착해 지하철 현황판을 바라본다. 연이어 2~3대의 지하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모습이다.

'계속해서 지하철은 오는데 뭐가 그리 바쁜 걸까. '

눈앞에 서있는 지하철을 보내고 다음 지하철을 기다렸다. 유난히 가깝게 붙어달 리던 지하철은 금방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앞선 지하철에 비해 확연히 한적하다. 앞서 지나간 지하철은 계속해서 붐비는 역할을 해주고 바짝 뒤따라 가는 지하철은 앞 지하철 덕분에 비교적 여유롭다. 출근길 마음도 덩달아 여유로워진다. 날 치고 앞서 간 사람은 계속해서 좁은 공간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조금 일찍 가보려 사람들은 주위를 둘 어볼 시간 없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간다. 남에게 피해 주는지도 모른 채. 조금 빨리 갔다고 생각하지만 정해져 있는 하나의 노선을 달리는 지하철은 앞선 노선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2분의 여유가 없던 사람은 계속해서 불편한 상태를 가지고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 빨리 가려고 하지만 희생해야 할 것들이 많다. 세상에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계획한 데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흔하디 흔한 출퇴근길도 그러한데 인생도 다를까. 내 맘 데로 안될 것이니 그냥 막살자거나 인생에 의미가 없다는 염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에 조금 여유롭게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여유롭게 가면 마음도 편안하고, 조금 더 의미를 되곱씹을 수 있지 않을까.  


주말에는 가족들에게 온전히 시간을 투자하려고 한다. 나중에 재정적으로 나아지거나, 여유로워진다면 분명 지금을 되돌아볼 거다. 어느 정도의 성공이든 반드시 지금을 그리워할 것 같다.

'그때가 좋았지. 조금 못 먹고 못 써도 고군분투하며, 가족과 함께 할 그때가 재미있었어..'

흔히 성공이라고 말하는 종착점에서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가더라도 가는 길이 남들보다 여유롭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온전히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면서 다가가고 싶다. 어차피 우리는 지하철처럼 종착역에서 모두 만나게 될 거니까. 조금 일찍 도착하는 것보다, 가는 동안 여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가서 깨닫는다면 얼마나 슬플 일일까. 근태관리 잘하는 나지만 그런 지각생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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