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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Jul 20. 2020

텔레파시 보내는 법

예의없는 사람들의 안테나를 세워주자


귀갓길 지하철에서 젊은 커플의 목소리가 유난히 컸다. 비좁은 공간 속에서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 싶지 않은 자신들의 취향과 맛집에 관련된 이야기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스토커가 된 기분이랄까. 알고 싶지 않은데 자꾸 그들의 생각, 취향을 엿듣고 있는 기분이다. 하이톤 뾰족한 목소리는 내 귓속으로 계속해서 비집고 들어왔고, 다른 생각을 하려 노력했지만 머리도 그들에게 순응하고 말았다. 잠깐의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텔레파시가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미간을 잠깐 찡그리며 메시지의 힌트를 보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돌고래로 태어나지 못한 나를 탓한다. 얼씨구. 여름이 오는 문턱에서 뭐가 그리 추운지 이제 서로의 몸을 쓰다듬어 주며 에어컨 추위를 쫒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와이프 번호를 눌렀다.  

"나 지금 집에 가고 있어. 여기 시끄러운데 잘 들려?

잘 안 들린다고? 지하철 안인데 앞에서 겁나 시끄럽게 대화하는 애들이 있어가지고 잘 안 들릴 수도 있어.

몰라. 관심 없는데 뭐 지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엄청 크게 하네. "

백미는 그들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통화를 한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텔레파시를 다시 보낸다.

'뭘 봐? 전화하는 거 첨 봐?'


하루는 세미나를 갔다. 강의 시작 전 자리에서 두 명의 참석자가 음식을 먹고 있었다. 강의실 문 앞에 붙은 '음식물 반입 금지' 표시는 글자가 아니라 그림이었다. 해석은 각자 다르거나 의미를 전혀 못 알아보니까. 예의 없는 사람들의 특성은 자존감이 무척이나 뛰어나다는 거다. 자존감은 목소리를 크게 만드는 것 같다. 공공장소에서 저급한 만담은 무척이나 듣기 거북하다.


핸드폰을 다시 꺼내 들었다. 친한 친구 놈의 번호를 눌렀다.

"어. 지금 세미나 와있는데, 여기 좀 시끄러운데  혹시 잘 들려?

잘 안 들린다고? 뒤에서 시끄럽게 대화하는 사람들이 있어가지고 잘 안 들릴 수도 있어.

넌 시끄럽기만 하니 다행이지.

여기 음식물 반입 안된다고 적혀있는데, 뭐 먹고 있어. 냄새도 나. 대박이지? "

그들은 어느새 돌고래가 되어 내 텔레파시를 알아먹고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방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

"뭐요?.. 혹시.. 지금 제 전화 엿들으신 거예요?

뭐야 정말. "


예의 없는 사람들. 억울한 상황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꾹꾹 참고 텔레파시만 보낸다. 텔레파시가 전해졌으면 좋겠지만, '눈치'라는 안테나는 그들에게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직접 말하는 것도 별로다. 굳이 말 걸어봤자 논쟁이 일어날 뿐이고, 귀찮아 지니까. 피해 보는 사람은 언제나 착한 사람들 몫이다. 가만히 있어도 피해, 지적해도 피해, 싸워도 피해. 분노란 감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 착한 척 피해자 코스프레는 그만하자. 짜증 난다고, 분노한다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분노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살펴보니, 우리가 느꼈던 분노는 대부분 정당하지 않았나? 분노를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게 정당하는 뜻이지, 분노를 내키는 대로 표현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분노를 잘 표현할 수도 있을까? 당연히 그렇다. 어떠한 감정이 생겨나고 그것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일 자체는 감정에 휘둘리는 게 아니다. < 당신의 생각은 사양합니다.>


내가 가진 분노에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그저 내가 화가 난 것을 알아채고, 그 감정을 밀쳐내지 말고 알아주면 된다. 저자의 언급대로 멋지게 분노하고 화내고 싶다. 그래서 말인데..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상황에서 대처 안을 ‘상상’만 하며 혼자 킥킥 대고 있었다. 상상만 해도 분노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랄까.

그래도 언젠간 한번 시도해 볼만한 가치는 있지 않겠나. 도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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