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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Nov 24. 2020

첫 경험은 언제나 짜릿하다

몸살이 걸렸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발 밑의 두꺼웠던 얼음판이 깨졌다. 크랙 사이 차디찬 물밑으로 내 몸이 깊숙이 빠졌다. 한기가 몸속으로 깊숙이 찔러 들어오고, 옴 몸이 덜덜덜 떨렸다. 

역시, 꿈이었다. 


그러나 한기가 여전히 느껴졌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극세사 바지와 플리스 상의를 목 끝까지 채우고 이불 밑에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한기가 돌았다. 입으로 뱉고 싶지 않은 신음이 자꾸만 세어 나왔다. 나지막하게 살려달라는 구조 요청 마냥 신음을 뱉었다. 

 '으으으으~' 

신기하게도 자동적이었고 반사적이었다.  와이프가 새벽에 깨어 아프냐고 물어본다. 방금 전 와이프가 신나게 치아를 갈던 소리가 내가 빠진 얼름장이 깨지던 소리인 것으로 퍼즐이 맞추어진 기분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코로나인가? 열이 나고 근육통이 난다던 그놈이 나에게 찾아 온건가'

"지연아, 온도 좀 재 줘"

머릿속이 어지럽다. 몸은 아픈데도 불구하고 코로나 감염 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머릿속 프로세스들이 빙글빙글 맴돌았다. 

'삑-  37.2도'

우려할 온도는 아닌 것 같다. 와이프가 가져다준 감기약 2알을 삼킨 후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체온을 잿다. 온도는 정상. 하지만 한기가 아직 느껴지고 어깨와 등 위주로 욱신 거리는 통증이 느껴진다. 

'말로만 듣던 대상포진인가? '

온갖 병명에 대한 유추가 난무했다. 상의를 벗어 거울로 다가가 포진의 징후를 살펴보지만 이것도 틀린 것 같다. 

"그냥 그거 몸살이야. 원래 몸살 나면 아프고, 한기 느껴지고 그래 " 

그렇다. 난 몸살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접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놈. 몸살이 내 몸에 찾아왔다. 



정확히 5년 전이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명절날 와이프와 함께 고향 부산을 방문했다. 결혼 후 처음 시월드를 방문 그녀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경험했을 것이다. 스트레스는 항상 병마를 동반한다. 그렇게 그녀는 '몸살'이라는 병을 앓았다. 내심 못마땅했다. 몸살을 겪어 본 적 없는 난 얄팍한 꾀병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말이 쉬워 몸살이지 뭐가 아픈다는 거야... 그냥 좀 피곤하다는 거 아냐?...' 

처음 방문한 부산에서 어머니는 며느리 병시중을 들어야 했다. 공휴일이라 병원은 열지 않았고 약국마저 문을 연 곳이 없어 어머니는 약을 구하러 이리저리 다니셨다. 몸살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공감 부족이랄까.. 그렇게 그녀를 원망했던 내가 얼음물 속으로 빠져 달달달 떨며 한기를 느끼고 있게 될지 그때는 몰랐다. 왜 그렇게 미련했고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던가.


생각보다 쌧다. 몸살이라는 놈은 강적이었다. 옷을 껴입어도 한기가 느껴졌다. 특히 어깨죽지와 허리 쪽 근육통이 심했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숨이 막히는 통증에 신음이 절로 세어 나왔다. 퇴근길 약봉지 가득 몸살약을 가득 사 왔다. 와이프가 만들어 놓은 따뜻한 죽 한 그릇 후, 온갖 약을 먹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9시간의 깊은 수면 후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몸살이라는 놈. 강하긴 한데 어째 지구력이 영 꽝인 것 같았다. 

이거 효과 좋네요... feat. 몸살 후기 


몸살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배우자, 그리고 가족은 필요하다. 

아프면 가족이 필요하다는 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믿었다. 아플 때 혼자면 슬프다는 것 너무 이상적이고 당연한 말 아닌가. 새벽에 그렇게 이를 갈며 자던 와이프도 내 신음 소리를 듣고 깨어 날 챙겨준 가족. 생각보다 가족은 필요하다. 꼭 내가 아파 보살필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니더라도, 가족들이 아프면 내가 더 강해지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다.  


어머나, 살이 빠졌다. 

역시 다이어트는 고생하면 빠지는 거다. 나이가 먹은 후 같은 운동량을 유지해도 쉽게 빠지지 않던 살이 하루 이틀 사이 얼굴이 갸름해졌다. 몸살이란 놈이 약간의 젊음을 선물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 기세를 몰아 다이어트를 조금 타이트하게 해야겠다. 아직도 철없는 정신머리는 여전한 것 같은 느낌이다. 


병마가 선물한 공감

'몸살=꾀병'이라는 공식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병에 대해 공감은 어렵다. 몸살이 생각보다 센 놈이라는 것을 느끼고 몸살에 걸린 과거의 그녀. 와이프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첫 경험은 역시나, 언제나, 항상 짜릿하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몸살은 산뜻한 충격을 선물했다. 근육통과 오한, 두통까지.. 한 번에 종합 선물 세트로 찾아오는 병은 생각보다 치명적이고 매력적(?)이었다. 

'이 고통 생각보다 짜릿한데? '

인간의 극한을 경험해 본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가끔 감기약 먹고 몽롱한 상태를 즐기는 그런 기분? 첫 경험은 언제나 짜릿하다. 하지만 한번 겪어 봤기에 이번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다시 그 친구가 찾아온다면 쓰디쓴 약 한봉과, 따뜻한 잠자리, 충분한 휴식으로 잘 달래어 보내줄 수 있을 것 만 같다. 그렇게 짜릿했던 몸살과의 동침을 겪고 오늘도 조금씩 강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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