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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Sep 14. 2022

누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나

어른들의 가스라이팅 


어느 가을날. 그를 길에서 만났다. 

허름한 인상착의 그리고 건성으로 서있는 자세가 눈에 띄었다. 



그는 매우 지쳐있어보였다.

그에게 가까이 가도 그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난 그의 집중력 있는 모습이 되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는 이쁘장하게 생긴 남정내였다. 

아니.. 아직 모른다...

여자일지도 모르지.



내가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마치 넉나간 사람처럼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있는지, 무슨일이 있는지, 

하는 일은 고되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그저 최근 마신듯한 음료 두잔과 

코로나가 끝나 드디어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게 된

기념의 마스크가 그저 그의 상황을 짐작하게 할뿐.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호랑이 기운이 가득한 상의에서
그의 젊은날 열정과 에너지가 전해진다.  

그도 아마 젊은 날 뜨거운 청년이었을 터. 



"선생님, 일은 힘들지 않습니까?

무슨 생각을 그리도 하십니까?"



그가 말했다. 

"이제 이 일자리도 로봇 아니면, 

마네킹 따위가 저를 대신하게 돼겠지요."


누가 '직업'에 귀하고 천함이 없다고 했는가.

귀하고, 천함을 넘어 이제는 직업의 종말 시대 문턱에 우리는 서있다. 


과거 어른들의 '가스라이팅'에 우리는 지쳐있다. 

지식인들의 말장난에 아직도 우리 뇌는 

직업의 귀하고 천함을 논하면 되지 않는다는

'착한척'(?)에 빠져있다. 


신분제는 폐기된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신분은 '소유'의 정도에 따라 나뉘게 된다. 


'소유'는 법으로 제도화 되어 

사유재산을 인정한다.

국가에서도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보장해 준다.


즉, 

많이 가진 자가 높은 '신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신분(=자본)은 세습이 된다. 

과거와 동일하게 신분이 세습된다. 


자본주의란 그러하다. 

인간의 본능이 그러하다. 


아직도 순수한 마음과 윤리적인 시선으로 

'직업'과 '돈'에 대해 보고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공부하던 책을 덮고

(=지식인인척 말고) 

나가서 현실을 마주해보라고 추천한다. 



과거 생산 수단이었던 토지는 

'등기권리증'으로 법으로 소유를 보장 받는다. 

(등기권리증이 '법원'에서 발급하는 이유이다.)

 

교환과 저장 수단의 매개체인 '돈'은 

당좌 계좌에 소유의 권리를 보장한다. 


현대의 새로운 생산 수단인 '기업'은 

유가증권 (=주식)으로 

주주의 소유에 대한 권리를 보장한다. 


하물며 무형의 '지식'은 

지식재산권으로 보장한다.


모두 '소유'다. 

얼마나 소유했는가에 따라 현대의 신분은 정해진다. 

직업도 동일하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있을 여유가 없다. 

 직업이 없어지거나, 일터를 잃고서

그때도 '귀천'을 따질것인가 말이다. 

 

직업의 종말시대에서 살아 남으려면 

'소유'에 대해 이해 해야한다. 

여전히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자본에 따르는 신분제를 살고 있다. 



아직 깨닳지 못한 그는 여전히

과거의 노스텔지어에 빠져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 과거 모습이 내 머리속에 

오버랩되며 애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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