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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Mar 25. 2020

아직 기저귀를 못뗏다던데 한 말씀만 해주시죠

34개월 딸아이의 똥 이야기

34개월 차 다은이는 아직 기저귀를 못뗏습니다. 가끔 친어머니께서 제 어릴 적과 비교하시며 "어서 떼야 되지 않겠냐"며 보채시지만 부모인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대변 후 매번 물로 세척하여 아랫도리를 다 씻기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아이가 똥 닦는 시간을 즐거워하거든요. 아이가 컷을 때 "내가 네 똥도 닦아주고 어떻게 키웠는데~"하고 우스갯소리 할 추억도 될 것 같고요.


변기에 똥을 쏘옥 넣어 주면 다은이는 신나서 "안녕"이라고 손을 흔듭니다. 그리고 똥 친구는 빠른 물살에 회전하며 사라지지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욕조를 잡고 다리를 벌립니다. 샤워기를 비데 삼아 깨끗이 물로 세척해 줍니다. 다은이 친구, 똥의 탄생과 이별의 시간입니다. 


너에게 배변의 자유를 허하노라.


다은이는 영혼의 아지트가 있습니다. 거실 한편 스탠드식 에어컨과 책꽂이 사이 조그마한 빈틈이 그곳입니다. 가끔 다은이가 아끼는 자동차 장난감들과 선글라스의 행방이 묘연하면 그곳을 찾아가면 됩니다. 큰 배변도 항상 이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전한 장소에서 편한 마음으로 집중해야 쾌변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취약한 순간이 바로 배변을 하는 순간일 겁니다. 원시 시대에도 그랬겠지요? 깊은 수풀 속에 들어가서 은밀히 행하거나 먹이를 잡는 위기의 상황 때 갑자기 일을 해결해야 할 순간에는 누군가 경계의 망을 봐줬을 겁니다. 원초적 본능인 배변은 자유롭게, 편하게 즐겨야 합니다.  


아빠인 저도 무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똥을 바지에 싼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참고 참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드디어 터질 것이 터진 것이지요. 이렇게 '똥밍아웃' 하게 될 줄이야. 당시 꽤 충격이 오래갔던 것 같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똥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으니까요. 아직도 어머니는 그때의 일을 가끔 장난 삼아 말씀하십니다. 그 시절은 초등학교에서 대변을 보면 안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애들에게 '똥쟁이'라고 한 학기 동안 놀림당하느니 어머니에게 구박받는 게 나은 시절의 소심한 학생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가면 선생님께 '쉬는 시간에 뭐했냐?' 고 구박받을 테고, 쉬는 시간 10분 사이 화장실에서 편하게 일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했으니까요. 80~9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소심한 학생이셨다면 적극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인간의 배변의 자유를 억압한 결과가 큰 파괴력(?)을 가지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를 교훈 삼아 절대 다은이의 기저귀 졸업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배변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다은아 똥을 즐겨라. 아빠도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바지에 똥 쌌다.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언제일까요? 


통계적 숫자는 18~24개월에 대소변을 보고 싶다는 느낌을 알고 부모에게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 상태에 맞춰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은이가 배변 훈련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똥 싸는 훈련도 하고 곧 잘 흉내도 냅니다. 하지만 변기 위에서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다은이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아빠랑 엄마는 화장실에 앉아 응아 하는 모습을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똥 친구가 변기 속으로 들어가 내려가는 모습도 즐겁게 보니까요. 단지, 지금은 다은이는 영혼이 가장 편한 장소에서 자유롭게 일을 보는 것뿐이지요. 언젠가는 다은이도 변기에 앉아 일을 보는 것이 더 편한 순간이 올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딸아이의 쾌변을 응원합니다. 우리 모두 즐똥입니다.




다은양. 한마디만 해주시죠. 언제 기저귀를 떼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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