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물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많고 딱 30권의 책을 맛있게 읽겠어요.
중학교 때 전교 1등 하던 친구 놈이 '로마인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는 겁니다. 만국 공통 속담급인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귀에 못이 박혀있기에 책 좋은 건 저도 알고 있었죠. 시도를 안 해봤을 뿐이죠. 호기롭게 여름 방학 때 로마인 이야기를 구입했지만, 표지와 챕터1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뱅뱅도는 독서의 버뮤다 삼각지대에 표류하게 되었지요. 한글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 독서의 '공황상태'를 만들었죠. 결국 그 책은 저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습니다. 독서가 무서워졌어요. 아마도 이때 독서가 싫어지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게다가 친구 놈에게 다른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더 가관이었습니다. 무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권했습니다. 독서 초보에게 두 번의 카운터 펀치를 맞고 독서라는 링을 떠나게 된 것 같아요..
인생 방향은 순간의 번뇌와 결정, 그리고 행동이 결정하던가요. 배우자의 출산 후 아이를 위해 부모 스스로가 바뀌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한 '독서'가 제 인생을 통째로 뒤 흔들고 있습니다. 독서량은 월평균 12권. 취미는 서점에 신상 책 둘러보기. 취미는 '글쓰기'. 요즘은 매일 1일 1글쓰기로 바뀌었습니다. 어쩌다가 '독서'가 인생의 메인 키워드로 등극하게 된 걸까요. 중학교 시절 그 저를 공경으로 빠뜨렸던 '로마인'도 놀라 자빠질 지경입니다.
책을 빨리 읽는 편입니다. 아니요. 정확히 말하면 빨리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어쩌면 1권을 빨리 읽고 치워버리는 것에 대한 집착 혹은 만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일을 성취하고 나면 저희 뇌에서 보상심리인 '도파민'이 붐비되잖아요. 그 '성취욕' 맛에 중독돼서 어쩌면 숫자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한 달에 10권이 되든, 1권이 되든 그게 중요할까요?"
라고 적으면서도 속으로는 그래도 10권 읽는 게 낫지!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허허.
한 달의 시간이 있다면 하루에 1권씩. 책을 꼭꼭 되씹으며 읽고 싶습니다. 게다가 장소는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조용한 카페였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독서는 항상 전투적이었거든요. 저의 독서 공간은 사무실로 나가는 지하철 안이거든요. 항상 분주하고 정신없는 그 네모칸 안에서 시간을 쥐어 짜내며 전투 독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간의 휴가가 있다면, 시간을 길게 나열해놓고 하루하루 단 한 권의 책을 깊게 읽고 생각하고 싶어요. 하나 저에게 한 달간의 휴가가 있을 리 없지요. 게다가 있다고 한들 살아온 관성 때문에 여유를 부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이. 매번 주어지는 '휴가'일지도 모릅니다.
'여느 때와 같이 책도 읽고, 일도 하고 즐기는 시간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한 달이 주어진다면?'는 조건들이 무의미하게 되네요.
휴가가 한 달 동안 주어지면 무엇을 할까? 가 아니라, 매 순간 저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12번 주어지고 그것을 합쳐 1년이라고 칭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22년도 이제 고작 한 달이 남았네요. 달라질 건 없습니다. 동일하게 책도 읽고, 제가 좋아하는 일도 하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겁니다. 한 달의 휴가가 아니라, 인생이 하나의 휴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즐거워지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살짝 오글거리긴 하지만,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납니다.
"나의 인생, 잘 놀고 잘 즐기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