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했던 나에게 셀프 칭찬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된 건 2022년 3월 마지막 날이다. 올해의 3월 마지막 날이 되려면 아직 많이 남았지만 나의 꾸준한 게으름이 언제 발현될지 몰라 미리 축하하고 싶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어렵지만 꾸준히 하는 것은 더 어렵다. 나야 '인정 중독'으로 인해 '열심'은 장착되어 있지만 '꾸준'은 어렵다. 중간중간 칭찬과 인정이라는 연료가 없으면 계속 나를 불태울 수가 없다. '꾸준히'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늘 일희일비하고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해서 무언가를 꾸준히 해보겠다는 결심은 해보지 않았다.
작년부터 꾸준히 열심히 한 것은 골프와 글쓰기다. 골프는 칠레에 정착하는 동안은 하지 못했지만 최근 다시 시작했다. 열심히 하는 편이다. 결과는 미약하지만. 글쓰기도 특별한 성과는 없지만 꾸준히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고 본다.
글쓰기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에 사는 것이 생각했던 것만큼 여유롭고 아름답지 않다. 몸도 마음도 적응이 필요하다.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볼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글쓰기라도 붙잡고 있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시점은 내가 휴직 중이었을 때다. 시간의 여유가 있었고 뭔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기였다. 내 생일을 기억하지 않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으로 폭발한 엄마와의 갈등은 결국 가족과 거리 두기로 이어졌다. 이것은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계속 써도 될까? 하는 고민도 많았다. 그 고민은 지금도 하고 있다.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것 같고 내 글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조회수, 라이킷, 구독자 수로 나를 평가할 때는 특히 그랬다. 그런 숫자로 나를 평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나를 평가하는 데 익숙하니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을 남편과 아이들 말고는 아무도 모르니 칭찬해 줄 사람이 별로 없다. 나의 열정은 칭찬에서 나오니까 이제 내가 나를 칭찬해 줘야겠다. 아니 격려해야겠다. 잘했다는 칭찬은 평가에 기반한 것이니까.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썼던 나를 격려하고 싶다.
"포기하지 않는 너,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위로가 되었던 글을 적어본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았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태오에게
나는 꾸준히 일희일비할 거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계속 들 것이다. 글쓰기를 잘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포기하고 다시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