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 타인이 보는 나
어젯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칠레는 밤이고 한국은 아침인 시간. 한창 일할 시간에 친구는 짬을 냈다. 친구는 자신과 가족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했다. 나는 듣고 그는 말한다. 그 친구와 얘기할 때는 나는 주로 듣는다.
친구는 불쑥 이야기를 꺼낸다.
"요즘 A는 정말 얌체 같아!"
"무슨 일이 있었어?"(이럴 때 맞장구치면 안 된다. 그냥 들어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
A와 친구, 그리고 나는 교사다. 모두 큰아이를 같은 초등학교에 보냈고 심지어 학년과 반도 같다. 시골에 있는 혁신학교라 한 학년에 반이 하나라서 그렇다. 나는 친구, A와 각각 같은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다. 나는 그들과 근무하면서 아이 친구의 엄마로 자주 만났고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구가 왜 A를 얌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는 다짐한다. 나는 A에 대해 험담하지 않기로.
"사람은 참 다양한 면이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해놓고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 친구가 나에게 보여줬던 얌체 같은 모습들이.
마음속으로 '너도 그렇잖아!' 해놓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타인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알기 어려운가 보다. 그럼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친구와 A 모두 나와 잘 지내고 있다. 나는 그들의 장단점을 알고 있다. 단점이 있음에도 그들과 잘 지내는 이유는 그냥 좋아서다. 2,30대에는 어떤 사람에게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 보이면 관계를 단절시켰다. 서서히 또는 빠르게.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가진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쌓이면서 인간은 참 입체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그렇듯이. 예전처럼 어떤 부분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내다 보면 지금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이제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포용력 또는 여유가 생겼다. 내게 미워 보이는 그 모습도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여러 가지 모습 중 하나일 테니 그냥 넘어가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들도 나를 받아주었듯이 나도 그들을 받아주자고.
모든 사람과 잘 지내겠다는 다짐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조금 실망하더라도 섣부르게 멀리하지는 않겠다. 멋있다고 생각했던 내 남편도 같이 살아보니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는 것을 세월이 한참 지나고 알게 된 것처럼 누군가를 오래 알게 되면 좋은 모습만 볼 수 없다는 것을, 때때로 실망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