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날 때 남 탓하기
요즘 관심 있는 주제가 있다. 채식과 커피 끊기.
내가 읽는 책의 작가들은 젊다(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리다). 그들 중 여럿이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채식을 실천하고 권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다. '나도 실천해 볼까!' 하다가 포기했다. 더 나이 든 후에, 아이들이 몸성장이 끝나면 하겠다고 핑계를 댔다. 커피는... 끊어야 할 이유가 마셔야 할 이유보다 더 많고 설득력이 있다.
커피를 오랜 시간 사랑했다. 대학 때 자판기 커피를 시작으로 믹스 커피를 마시다가 돈을 벌게 되면서 카페를 다닐 수 있게 되자 원두커피를 마셨다. 처음에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마시다가 커피 맛에 푹 빠졌고 일에 빠져 있을 때는 습관처럼 마셔댔다. 맥주보다 더 많이 마셨다. 일할 때는 물 대신 마셨으니까.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은 지금도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남편이 내려주는 커피를 오전에 한 잔, 오후에 한 잔씩 마신다. 글을 쓰거나 무언가에 집중할 때는 커피가 꼭 필요하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지병으로 앓고 있는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지난 금요일에는 점심으로 남편과 라면을 1개 끓여서 반씩 나눠 먹었는데 그게 탈이 났다. 커피까지 마셨으니 장에 탈이 제대로 났다. 커피와 라면의 만남이라니. 하필 아이들을 하교시키러 가는 날이었다. 버스에서 배가 아프면 어떡하지. 걱정과 불안으로 힘든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남편이 일찍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해서 커피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나도 덕분에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괜히 짜증이 났다. 아이들의 사소한 실수에도 화를 내고 가족들의 세끼를 챙기는 일도 귀찮기만 했다. 저녁에 했던 비빔국수가 실패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오늘 되는 일이 없네!'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루 내내 '오늘 내 기분이 왜 이러지?' 하는 생각만 했다. 어제 일찍 잤고 남편은 격주로 토요일에 대학원에 가는 것을 알고 있고 아이들은 얌전하게 놀거나 공부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지. 이럴 때는 남 탓을 하는 게 가장 편하다. 갑자기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게 생각났다.
커피를 안 마셔서 내 기분이 그랬을까. 나는 오늘 왜 하루 내내 화난 사람처럼 굴었을까. 소화도 되지 않고 머리가 아파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다. 커피를 마시면 내 몸과 마음은 다시 좋아지는 걸까. 이유를 몰라 답답하기만 하다.
근데 이유를 꼭 알아야 될까. 뭐든 분석해서 원인을 찾아서 고쳐야 될까. 기분은 수시로 변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고 요리는 실패할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 화를 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럴 때 필요한 태도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관대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