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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Apr 25. 2023

올해 5월은

속상하지 않았으면 해

한국에 살던 시절, 5월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여유롭기도 하고 바쁘기도 했다. 학교는 3월에는 개학으로, 4월에는 중간고사 출제로 바쁘다. 5월이 되어야 비로소 여유가 생긴다. 중요한 약속은 모두 5월에 잡는다. 집은 사정이 달랐다.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아이들의 학교 행사까지 챙기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이들이 다니던 혁신학교는 5월에 '도전활동'이라는 가장 중요한 행사가 있어 가기 전부터 준비하느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양가 부모님을 위해 식당을 예약하고 참석하여 가족들을 만나는 것도 피곤했다. 


이곳에 오고부터 시부모님께는 기념일에 전화 통화만 하고 용돈을 따로 보내지 않는다. 한국을 떠나 올 때 거금을 드리기도 했고 여기서는 모든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시부모님은 서운해하실 수도 있지만 내 용돈으로 일희일비하시는 분들은 아니다. 친정 부모님과는 1년 전에 연락을 끊었으니 이미 많은 것을 면제받았다. 


5월에는 내 생일이 있다. 음력 생일이라 4월이 되기도 하고 5월이 되기도 하는데 보통 5월에 많이 걸린다. 작년 내 생일을 계기로 원가족 내에서의 나의 모습을 알고 많은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진 것이 도움이 되었다. 한국에 살았다면 쉽게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를 험담하고 늘 도움을 바라는 아빠를, 아빠를 험담하고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폭언을 하며 자식에게 많은 것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엄마를 보지 않아서 좋다. 가족모임에서 남편이 참석한 자리에 친정 부모님을 함부로 대해 나까지 창피하게 만드는 오빠를 보지 않아서 좋다. 사이가 좋지 않은 언니 부부를 보지 않아서 좋다. 결혼 초반에는 시댁 식구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었는데 자주 봐서 나도 익숙해졌나 보다. 언젠가부터 친정 식구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고 싫어졌다. 


친정 식구들을 만나고 오면 늘 다짐했다. 자주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오빠에게 쩔쩔매는 엄마를 보는 게 싫었고 오빠의 짜증에 주눅 드는 언니와 나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 가끔은 고맙다는 인사도 할 법한데 당연하게 밥상을 받는 친정 부모님을 보는 것은 제일 괴로웠다. 


이제는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서운해하지 않아도 되고 엄마가 다른 집 딸들과 나와 언니를 비교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우리 가족이 남들처럼 화목하지 않다는 것이 가끔 슬프기도 하지만 내 노력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친정을 시댁과 비교하면서 내가 작아지지 않아도 된다. 




칠레에서는 5월에 바쁘지 않을 것이다. 속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5월에 있는 내 생일에 충분히 축하받고 기뻐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를 사서 먹을 것이고 미역국에 소고기를 듬뿍 넣어 맛있게 끓일 것이다.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살 것이다.  태어나 버렸으니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찾을 것이다. 


힘든 순간마다 나를 일으켜 주었던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할 것이다. 내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고. 도와주셔서 고맙다는 편지도 쓸 것이다. 


어느 때보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5월이면 좋겠다. 1982년 5월에 태어난 내가 2023년 5월에 사랑받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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