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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Jun 16. 2023

출근하지 않는 삶

가벼운 마음으로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

오늘 샤워하다가 문득 생각났다. 

'아, 나 내일 출근 안 하지!'

안심했다. 휴직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오늘 회사원이 쓴 에세이를 읽어서 그런가. 갑자기 복직이 두려워졌나.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9년 정도 되었다. 중간에 육아휴직 3년을 제외하고는 직장인으로 살았다. 요즘도 가끔 몸이 피곤하거나 아이가 아플 때는 내일 출근을 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확인하면 속으로 다행스러운 한숨을 내쉰다. 


대학을 졸업하고부터 계속 출근을 했다. 육아는 출퇴근이 없는 업무라고 생각했다. 교사에게는 방학이 있지만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나는 방학에도 출근을 해서 업무 처리를 하는 날이 많았다. 30대 후반부터는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의 에너지도 고갈되어 계속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재작년부터 쉴 수 있었지만 번아웃을 겪고 난 직후라 훼손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바빴다. 이후에는 칠레 이주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칠레에 오고 나서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다. 칠레에서의 삶이 익숙해진 지금에야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가족과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누구의 딸이나 며느리가 아닌, 관계 속에 던져져 있지 않는 나로 살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다. 


요즘은 모든 것이 여유롭다. 어떤 상황도 다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오늘 회사원이 쓴 글을 읽으며 갑자기 불안해졌다.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지금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나중에도 할 수 있을까.'

오늘 닭가슴살을 맛있게 튀겨 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 가면 이런 것도 다 돈으로 해결하겠지?"




전업주부의 삶은 여유롭고 직장인은 여유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직장에 다닐 때는 근무 시간 동안 일터에 매여 있으니 시간이 없는 것은 맞다. 내가 말하는 여유는 물리적인 시간에 대한 것뿐일까. 직장에 다니는 동안 내 마음이 비좁았던 것은 아닐까. 더 여유롭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늘따라 업무도 인간 관계도 어느 하나 가볍게 대하지 못했던 내가 떠오른다. 후회스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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