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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Jun 25. 2023

시어머니는 왜 그럴까?

알다가도 모르겠는 시어머니의 마음

시어머니와 가끔 통화한다. 칠레에 와서는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 자주 통화한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전화를 하면 "자주 전화하지 마라. 일주일에 한 번만 해라."라고 하신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시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안다. 내가 여행을 가거나 어쩌다 전화를 못 드리는 날이 많아지면 나에게 꼭 카톡을 보내신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걱정된다고.


시어머니는 걱정이 많다. 나처럼 자주 불안해하신다. 결혼 초기에 나와 남편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을 나에게 말씀하실 때는 마음이 불편했다. '나를 못 믿나? 내가 알아서 다 하는데 왜 그러시지?' 하는 마음에 서운했다. 지금은 괜찮다. 속으로 '우리 시어머니는 걱정이 많은 분이지!' 하며 시어머니의 걱정을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요즘 시아버지의 병원 치료로 시어머니는 힘들어하신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려면 KTX를 타고 다시 택시를 타야 한다. 병원에 도착하면 시아버지는 검사를 받고 며칠씩 입원을 하신다. 잠자리가 불편한 병원에서 시아버지를 간병하는 일이 연세가 있는 시어머니에게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다. 남편이 한국에 있었다면 휴가를 내고 시아버지의 간병을 도왔을 것이다. 가끔 남편은 병원에 동행하지 않는 시누이들에게 서운해한다. 나는 일을 하고 있는 시누이들이 바빠서 시간을 못 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버님의 치료 결과와 앞으로의 치료 계획이 궁금한 남편은 어제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시어머니는 잘 설명해 주시더니 갑자기 "자식, 아무 필요도 없다."라고 하신다. 당황한 내가 얼른 전화를 가져와 시어머니께 어떤 점이 서운하셨냐고 물었다. "자식들이 알아서 병원도 예약해 주고 그러면 좋겠는데 내가 혼자서 하려니까 힘들다."라고 하신다. 


내가 말했다.

"그럼 언니들하고는 이야기해 보셨어요?"

"큰딸은 바쁘고, 둘째 딸은 몸이 약하고, 셋째 딸은 교대 근무하느라 힘들고..."


이상하다. 아들에게는 솔직하게 다 말씀하시면서 딸들에게는 왜 그러지 못하실까. 며느리한테는 부담되는 말씀도 다 하시면서 딸들한테는 왜 부담주기 싫으신 걸까.


"제가 언니들하고 통화해 볼게요." 

시어머니와의 통화를 끝낸 나는 바로 큰 시누이와 통화했다. 다 계획이 있었다. 시어머니의 한탄은 걱정이 앞서서 그런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시어머니가 우리에게 의지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보다 덜 나이 드셨을 때는 시누이들과 가깝게 지내시더니 나이가 들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바로 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며느리에게 부담주기 싫다고 나에게만 연락하셨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딸 고생하는 것만 걱정하시는 시어머니를 보며 며느리로서 서운하다. 속으로 '아들은 안 힘드나?' 하는 생각이 무한반복된다. 갑자기 엄마와 나의 마지막 통화 내용이 떠오른다.

"엄마는 왜 나한테만 그래?"

"네가 편하니까."


우리 시어머니도 내가 편한 걸까. 내가 만만한 걸까. 나는 안다. 시어머니가 의지하고픈 대상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아들인 내 남편이라는 것을. 나는 '시어머니가 딸만 배려하는 것'에 꽂힌 걸까, 아니면 '시어머니가 우리에게 의지하는 것'에 꽂힌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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