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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Jul 02. 2023

이제는 부럽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20대 톺아보기

어제 지인의 가족과 점심을 먹었다. 둘째 아이 반 친구의 가족이다. 둘째의 친구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두 명의 언니가 있는데 그중 둘째 언니도 식사 자리에 나왔다. 아이 친구 엄마에게 대학교에 다니는 딸이 방학을 해서 집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지인의 딸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서 같이 만나자고 했다.


지인의 딸은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칠레에 왔고 대학을 미국으로 갔다. 식당에 와서 나이가 한참 어린 동생을 잘 챙기고 능숙한 스페인어로 음식 주문도 척척 해냈다. 나이가 어림에도 예의를 갖춰서 말하는 태도도 좋았다. 학교에서 20대 선생님들을 볼 때면 그저 젊고 풋풋하고 예쁘다는 느낌만 있었는데. 지인의 딸은 다르게 느껴졌다.


밥을 먹으면서 나는 중간중간 지인의 딸에게 말을 걸었다. 학교 생활은 어떤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스페인어와 영어 공부하느라 힘들지 않았는지 등. 잘 듣고 우리 아이들 교육에 참고하려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냥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20대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식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왜 지인의 딸이 계속 신경 쓰였는지. 나의 20대와 너무 비교가 되어서다. 나의 20대는 슬펐고 억울했고 막막했고 우울했다. 집이 가난해서 슬펐고 부모의 빚을 갚느라 억울했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도 집안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막막했고 나의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우울했다. 관계에는 매번 실패했고 어디서든 실수했다. 실수를 인정하지 못했고 나를 사랑하지 못했고 외로웠다. 


지인의 딸은 내 눈에 대단해 보였다. 부모와 낯선 나라 칠레에 살다가 성인이 되어 혼자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 20대의 여성. 단단해 보였고 당당해 보였다. 차분해 보였지만 슬픈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안정된 부모 밑에서 자라 사랑받고 자란 것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었던 20대의 나는 '부럽다'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어디에서 들어서 그랬을까. 부럽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내가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삶이 초라한데 내 입으로 더 초라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40대의 나는 가진 것이 많아졌다. 남편과 아이가 생겼고 경제적인 안정도 이루었다. 예전보다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가진 게 많은 나는 이제 남에게 부럽다, 질투가 난다는 말도 할 줄 안다. 20대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그 말을 지금의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부럽다고 말해도 내가 초라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까.


어쩌면 가장 화려해 보이는 20대는 후회와 실패로 점철되어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취업에 실패하고 다른 누군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넘어지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나의 20대를 떠올리면 안타깝기만 하다. 돈이 없다고 마음까지 가난해질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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