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보다 더 바쁜 토요일

2023. 6. 24.

칠레 산티아고에 3일 동안 비가 왔다. 칠레는 한국에 비하면 강수량이 많지 않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며칠 동안 평소보다 비가 많이 내려 배수가 원활하지 않아 거리에 물 웅덩이가 생겼다. 어제는 단수 예고까지 있었다. 비가 내리지 않아야 단수하는 거 아닌가? 이상하다.


다행히 단수는 되지 않았다. 어제 오후는 6L 생수통과 집에 있는 모든 플라스틱 통에 물을 받아놓고 단수를 걱정하며 보냈다. 가족 모두 샤워를 일찍 하게 했고 저녁도 일찍 먹고 치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물이 나오는지 확인했다. 오늘 하루 내내 언제 단수가 될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남편의 대학원 수업이 없는 토요일은 시장에 간다. 일주일 동안 먹을 과일, 채소, 달걀 등을 사고 한인마트에 들러 가공식품, 조미료, 라면, 양념 등을 산다. 가지고 간 카트를 꽉 채우고 집에 오면 냉장고가 꽉 채워진다. 토요일은 바쁘다. 매주 김치를 담가야 해서 시장에 다녀와서도 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


시장에서 오자마자 옥수수를 삶고 김치를 담가 놓고 점심을 준비했다. 먹고 치우고 나니 나른해졌다. 체력 회복을 위해 낮잠을 자고 일어나 청소를 했다. 공기를 환기시키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은 간단하게 먹고 싶었지만 칠레에서는 외식을 할 수 없어서 결국 밥을 지어서 먹었다. 먹고 나면 뿌듯한데 몸이 피곤할 때는 하려는 마음이 안 생긴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동안은 외식만 하고 싶다.


어제는 지인의 집에 놀러 가서 점심을 먹고 왔다. 나와 지인, 두 명만 먹었다. 챙겨야 되는 사람 없는 편안한 식사였다. 내가 뭘 먹는지 자세히 알 수 있고 맛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야기의 힘이구나.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남편과 자주 대화를 나누지만 같은 성별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다르다. 여자만이 공감하는 이야기는 따로 있으니까.


지인을 집에 초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내가 얻어먹었으니까 갚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따뜻한 식사가 그리워서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차려준 밥상은 따뜻했다. 집에 갈 때 지인이 내 손에 들려준 아이들의 과자, 식재료 등이 무겁긴 했지만 고마운 마음에 들고 오는 내내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남편 친구의 아내도 나에게 자주 선물을 챙겨준다. 세세하게 이것저것. 매번 고맙다. 그런데 시간은 내어주지 않는다. 살짝 서운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시간을 잘 내주지 않는 사람이다. 반성하게 된다.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선물 말고도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게 좋겠다.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나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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