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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Jul 09. 2023

나를 슬프게 하는 말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와 남편은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옛날이야기, 자주 하던 혀 짧은 말 등등. 자신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번진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고 듣고 있으면 재밌나 보다.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조를 때도 있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있던 큰아이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돌잡이 때 뭐 잡았어요?"

"(당황하며) 엄마는 어릴 때 돌잔치 안 했어. 돌 사진도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돈이 없어서 그랬대."


갑자기 슬퍼졌다. 돌 사진만 없는 게 아니라 어릴 적 사진이 거의 없다. 6살 이후의 사진만 있다. 종종 아이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백일 아이는 얼마나 예쁜지. 돌 정도 된 아이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서너 살 된 아이는 얼마나 말도 안 되게 귀여운지. 그 시기의 나는 우리 가족의 기록에 없고 기억에도 없다. 


나는 어릴 때 엄마에게 돌 사진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앨범을 보던 나는 언니와 오빠에게는 백일 또는 돌 사진 중 하나씩은 있는데 내 사진만 없는 것을 확인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는 왜 돌 사진이 없어요?"

"돈이 없어서 못 찍었어."


엄마는 내 질문을 불편해했다. 어린 나도 느낄 만큼. 나는 그 이후로 그것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엄마는 가난이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 같아 미안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부모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아이로 살아갈 운명이 결정되었는지 모른다. 나의 부모님은 막내인 나한테는 먹이고 입히는 것 말고는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알아서 잘 크는 아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왜 어린 시절의 사진이 없는 것을 단 한 번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시댁에 가서 남편의 앨범을 실컷 보고 왔으면서 말이다. 


오늘 나는 생각한다.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을 돈이 없었다면 집에서라도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집에 카메라가 없었다면 아는 사람에게 빌려서라도 막내의 백일에, 돌에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것마저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하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자라는 내내 나를 함부로 대했던 걸까. 


나는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법을 아직도 모르겠다. 남편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생각했다. 그는 사과를 깎아서 한 번 먹어보고는 맛있는 사과를 나에게 주고 자신은 다른 사과를 먹는다. 나에게 무언가를 줄 때는 예쁜 그릇에 담아서 준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그는 나에게 꼭 한 입 먹어보라고 권한다. 가끔 먹여줄 때도 있다. 영양제를 꼭 챙겨준다. 남편은 나를 소중하게 대하고 있다. 남편과 교제할 당시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남편은 내 접시에 꼭 무언가를 올려주었다. 시댁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시누이들은 맛있으니 먹어보라며 내 접시에 음식을 담아주었다. 친정 식구들은 늘 자기 먹기 바쁘다. 친정에서는 그런 친절을 경험한 적이 없다.


왜 이제야 이런 것들이 생각났을까. 큰아이의 사소한 질문 하나에 서운함과 속상함이 폭발했다. 나는 그렇게 함부로 길러진 걸까. 부모님은 왜 나에게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어릴 때 나는 어떻게 생겼는지. 통통했는지, 말랐는지, 얼굴이 흰 편이었는지, 머리가 길었는지. 사십이 넘은 나이에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미치도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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