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와 화해할 수 있을까
내가 못난 엄마라고 느껴지면 나는 그를 생각한다. 나의 엄마를. 혹시 내가 엄마 같은지 점검한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나에게 엄마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점이 보였다면 나는 성숙하지 못한 엄마이자 나쁜 엄마인 것이다.
어제와 오늘, 둘째 아이의 말에 화가 났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화를 냈고 상한 마음이 오래갔다. 첫째와 다르게 둘째 아이가 나에게 하는 말은 나를 더 자극하고 화나게 한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묻는다.
'내가 어릴 때 둘째 같았을까?'
'그래서 엄마가 나를 그렇게 대했을까?'
'우리 엄마는 내가 그랬을 때 나에게 어떻게 했지?'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이나 사건은 없다. 나의 왜곡된 기억에는 나는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아이였고 엄마는 그런 나를 함부로 대했다는 것만 있다. 분명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조작된 기억일 것이다. 엄마와 멀어졌고 떨어졌는데 엄마는 내 마음과 기억에 찰싹 붙어있다. 떨치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못난 엄마'라는 틀에 갇혀 질식할 것 같다. 그 못난 엄마는 나일수도 있고 나의 엄마일 수도 있다. 둘 다 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해주었던 부실한 밥상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해 식단을 짜고 반찬을 만든다. 엄마가 아빠와 자주 싸웠던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들 앞에서 절대로 남편과 다투지 않는다. 늘 어질러져 있고 깔끔하지 않았던 집안을 떠올리며 청소에 집착한다. 엄마가 나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공감해주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타인과 대화할 때 최대한 경청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했던 행동의 반대로 하면 나는 엄청 좋은 사람이 될 것 같다.
엄마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엄마가 아이들을 잠시 봐줄 때, 반찬을 해서 가져다줄 때, 힘든 순간에 편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엄마 밖에 없을 때. 아이들은 내가 잠깐 외출할 때 자기들끼리 있을 만큼 컸고, 반찬은 내가 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일은 언제 생길지 모른다. 이전보다 삶에 대한 내공이 쌓여서 이제 힘든 일이 생겨도 혼자 해결할 수 있고 결국 혼자 해결해야 된다고 믿는다.
엄마는 진작에 자신의 마음에서 나를 내쳤는데 내가 엄마를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마음속에는 늘 안쓰러운 오빠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언니만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내가 이렇게 잘하면 언젠가는 나를 봐주겠지'하는 마음으로 엄마의 사랑을 기다렸던 게 아닐까.
오늘도 나는 그를 생각한다. 내가 엄마의 사랑을 간절하게 원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 부모님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한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짐한다. 나는 절대로 나의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나는 엄마가 길렀지만 나는 엄마가 아니라고. 마치 나를 자극하는 둘째가 내가 되지 않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