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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Oct 22. 2023

그날의 기억

이제는 햇빛을 비춰주고 싶어

한동안 잠을 잘 잤는데 요즘은 새벽에 자주 깬다. 불면증은 아니다. 살던 집의 월세 계약과 관련된 일로 한국과 연락할 일이 생기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시차 때문에 바로 메시지에 응답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런 것 같다. 


어제는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와 아빠의 육탄전. 그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내 몸은 굳었다. 거의 30년 전의 기억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놀랐다. 육탄전이라고 적었지만 아빠의 엄마에 대한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자주 그렇게 싸웠다. 싸운 이유는 거의 돈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다고 비난했고 아빠는 억울해했다. 엄마는 자존감이 약한 아빠를 말로 자극했다. 심한 욕까지 써가면서. 결국 참지 못한 아빠는 엄마를 때렸다. 다행히 아빠가 자식들 앞에서 엄마를 때리는 일은 별로 없었다. 방에 엄마를 데려가서 때리고 엄마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의 몸에 상처를 내고 엄마는 아빠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던 날, 집안에 흐르던 공기와 온도는 아직도 몸에 남아 있다. 집안은 어두웠고 습했다. 나는 집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무서웠고 창피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참 슬펐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린 나는 슬퍼하지 못했다. 슬픔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 일에 계속 무뎌지기를 바라며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나는 결코 무뎌지지 못했다. 오히려 어떤 갈등에도 더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엄마가 도망갈까 봐 두려웠다.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집에 없으면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럴수록 엄마에게 잘하려고 노력했다. 엄마와 같이 아빠에 대해 험담을 하며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엄마가 도망가지 않게 하려면 나라도 엄마를 기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엄마는 도망가지 않았고 자식들 중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갔다.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며 나는 엄마가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언젠가 상담 선생님께 이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가끔은 엄마가 맞을만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돈을 벌어오지 않아 살림살이를 어렵게 만드는 아빠도 미웠지만 아빠를 자극하며 집안을 전쟁터로 만드는 엄마가 더 미웠다.


자주 싸우는 엄마와 아빠 덕분에 나는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소하게 남편과 나는 의견 충돌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닫는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내 얼굴을 떠올린다. 자동적으로 싸움을 멈춘다. 


어제 자기 전에 집안에서 일어났던 피 튀기는 전쟁을 떠올리니 갑자기 슬픔이 몰아쳤다. 크게 울고 싶었지만 남편이 옆에 있어서 울 수 없었다. 안방 앞에서 몸을 떨고 있는 어린 나를 찾아냈다. 싸움을 말릴 수도 없고 싸움의 현장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나를 나는 안쓰럽게 바라봤다. 마음속으로 그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참 슬펐겠다.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아."


슬픔으로 가득 찬 그 아이를 생각하며 슬픔을 억압하고 살았던 나의 시간들을 떠올린다. 그 슬픔을 당장 기쁨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슬펐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축축했던 나의 과거에 햇빛을 비춰주고 슬픔을 바짝 말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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