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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Nov 27. 2023

도망가고 싶어

나를 놓아줘

오늘 아침 7시에 줌(ZOOM)으로 하는 명상 수업이 있었다. 1시간 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부터 했다. 밥을 하고 국을 데우고 도시락 반찬을 준비하며 하나씩 하나씩 계획했던 일을 끝냈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일을 해나갔더니 편안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가쁜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 없이 바로 명상에 집중하고 안내자의 말을 잘 따라가는 경험을 했다.


오늘 명상에서 함께 하는 도반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니 그들의 경험이 마치 내 경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젠가 겪었던 일, 했던 생각들을 남을 통해 들으니 신기하고 새로웠다. 도반들이 말하는 엄마와 자식에 관한 이야기,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경험 모두 나의 이야기 같았다. 오늘 나에게 이 이야기가 온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나는 궁금해졌다.


나는 엄마가 그리운가? 전혀 그립지 않다. 하지만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서서히 줄어가고 있다. 그를 용서하고 이해한 것은 아니다. 엄마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로 섣부르게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최근 읽었던 어떤 책에서 작가가 자신의 부모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다 마지막에 그들을 이해해 버리는(?) 결말을 읽고 허탈하다 못해 화가 났다. 나는 그 결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음속에서 애써 엄마를 꺼내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 명상 수업에서 유독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사람을 통해 나왔다.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엄마를 다시 꺼내볼 때가 된 것 같다. 그 마음이 패륜에 가까운 비도덕적인 마음일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보겠다. 나는 여전히 엄마가 싫고 밉다. 엄마는 나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갔다. 엄마의 결정은 늘 이기적이었고 엄마는 나를 가스라이팅했다. 


이것이 엄마가 나에게 했던 행동의 핵심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누군가가 나에게 엄마가 나를 대하는 것처럼 대하면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항상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여전히 붙들려 있다. 그렇게 붙들려 있는 나를 자책하고 있다. 엄마를 피할 수 있다면 지구 어디라도 가고 싶다.


나는 엄마가 두렵다. 다시 나에게 나타나 나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려고 할 것 같다. 나를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결국은 자신을 위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엄마. 엄마가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그 모습조차 나는 무섭다. 내가 엄마의 말에 흔들릴 것 같아서다. 오늘 명상에서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들은 모두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지만 내 경험은 그것과 많이 달라 슬펐다. 


내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누군가로부터 충분히 사랑받고 그것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 받은 사랑을 충분히 돌려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 많은 사람들이 엄마로부터 느끼는 전형화된 마음. 그 일반적인 마음으로부터 이탈하여 불순한(?) 마음을 품고 있는 내가 일반적이지 않아 괴롭다. 평범함이 이렇게 어려운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갑자기 시작된 미움이 가라앉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오늘 하루는 최선을 다해 엄마를 미워할 것이다. 그동안 미워하지 못하고 엄마를 사랑해야 한다고 억압했던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 그를 끝까지 몰아세울 것이다. 나한테 왜 그랬냐고, 꼭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냐고 따질 것이다. 엄마의 변명은 듣지도 보지도 않을 것이다.



사진: Pixabay,  Peggy und Marco Lachmann-Anke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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