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의 좋은 점

2023. 7. 13.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때는 1시간씩, 방학이나 주말에는 하루에 3시간씩 자율 학습 시간을 갖는다. 열심히 학교에서 뛰어놀다 온 아이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나는 봐주지 않는다.

"한국에 돌아가서 학교 진도를 따라가려면 지금 해야 돼!"


칠레에 오기 전 미리 아이들의 학년에 맞는 문제집을 구입해 왔다. 책이라 무거워서 이민 가방에 넣으면 다른 물건을 싣지 못하기 때문에 캐리어에 넣고 끙끙대며 가져왔다. 가장 걱정되는 과목은 수학이었다. 학기 중에 평일 공부 1시간 만으로는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나는 전전긍긍했다. 방학이 시작되자 하루 3시간 공부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학습 속도가 빠른 큰아이는 이미 1학기 진도를 마쳤고 둘째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곧 여행이 있으니 다 끝내고 가면 좋겠다고 부담을 주긴 했지만 하루 3시간의 꾸준함이 빛을 보고 있다.


시간이 쌓인다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꾸준히'라는 단어를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때, 젊어서는 '열심히'라는 단어가 가진 힘을 믿었지만 이제 나는 달라졌다. '꾸준히'는 더 어렵고 높은 경지다. 나의 글쓰기 실력도 시간이 쌓이면 좋아질까. 좋아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글쓰기가 내 삶을 돌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아이들의 공부를 옆에서 도와주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말한다.

"혼자 이렇게 하기 어려운데 너희들 대단하다!"

맞다. 어린 나는 이렇게 하지 못했다. EBS 강의를 찾아 듣고 혼자 문제를 풀고 내가 채점을 해주면 틀린 문제를 다시 혼자 해결해야 한다. 나는 가르쳐 주지 않고 가르쳐 줄 수도 없다.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끝까지 풀어내야 한다고 너는 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격려해 줄 뿐이다. 오늘 못 풀면 일단 넘어가고 내일 아침에 다시 보면 풀 수도 있다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동안 너의 생각이 커질 거라고 이야기해 줄 뿐이다.


내 공부 방법을 받아들이는 데 큰아이는 1년, 둘째는 3년 정도 걸렸다. 둘째는 문제를 풀어 주지 않는 나에게 서운해하며 자주 눈물을 보였다. 공부가 슬픈 것으로 각인될까 봐 나는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아이는 4학년이 되자 우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이제는 울지 않는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문제집을 들고 와서 빨리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나는 친절하게 거절한다.


아이들이 공부를 통해 인내심을 길렀으면 좋겠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문제집이 끝난다는 성취감을 느끼면 좋겠다. 하기 싫어도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면 좋겠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아이에게 주지 말자고.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투사하지 말자고.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아이가 이뤄주기를 바라지 말자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자기답게 살도록 서로 배워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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